[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히 양준일 신드롬이다. ‘뉴트로’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양준일’이라는 한 아티스트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별명도 ‘탑골 GD(지드래곤)’이다. 별명조차도 딱 뉴트로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양준일의 노래와 패션 스타일을 접하고 지금 현시대의 노래와 패션 같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30년이나 일찍 나타났냐.’는 댓글까지 달릴 정도이다. 그 말은 이 노래가 발매될 당시인 30년 전에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그렇기에 불편하게 다가왔을 것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양준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러한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가 돌이 날라 오고, ‘너 같은 사람이 싫다.’라며 비자 연장을 거부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아무도 곡을 써주지 않아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혼자 가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양준일로는 앨범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V2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했다고 한다. V2의 뜻도 ‘양준일 version 2’라는 뜻이란다. 그 당시에 본 캐릭터 양준일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였다는 씁쓸한 의미로 들린다.
 

사진_KBS


그렇다면 양준일은 틀린 것이었을까? 만약 양준일이 틀린 것이었다면 그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도 틀린 것이 된다. 양준일은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기술된 불합리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많은 대중들이 양준일에 대한 미안함과 그 당시 ‘꼰대’들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이러한 감정들이 지금의 양준일 신드롬을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힘이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30년 전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형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처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현시대에도 여전히 너무나 많은 꼰대들이 존재하고 있다. 30년 후의 사람들이 현시대에 오면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보일 것이고, 얼마나 많은 ‘제2의 양준일’들이 보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다름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제2의 양준일’일지도 모른다. 양준일이 겪은 일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과 분노는 현재도 진행형이고, 그래서 그건 바로 ‘지금의 내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더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여기는 수많은 꼰대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많은 꼰대들 속에서 힘겨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양준일이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다름’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유지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양준일은 그 수많은 다름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거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멋과 맛이 양준일이라는 사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양준일의 퍼포먼스를 보면 아이돌의 군무처럼 파워풀하고 화려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시청자가 보기에는 화려해 보인다.

아이돌의 군무를 보면 손가락 하나, 팔의 각도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움직임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런데 양준일은 다르다. 손가락 하나, 팔의 각도 하나하나가 다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화려하게 느껴진다. 동작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느낌(feel)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동작이 먼저 있고 움직임이 있는 것과 feel이 먼저 있고 움직임이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슈가맨 3’에서 작사가 김이나도 이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다. “안무였으면 이게 좀 낡은 느낌이 나는데... 동작은 트렌드를 타지만, 느낌은 트렌드를 안 타잖아요.”라고 했다.
 

사진_SBS


그렇다. 양준일에게는 ‘진심’이 있었기에 시대를 초월해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양준일의 인터뷰를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저는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러 나온 거고, 이야기를 내 몸으로 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양준일에게는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몸은 단지 수단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섹시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0년 만에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본 소감을 묻는 말에도 “옛날의 내 모습을 좀 보면서 다시 하려고 하니까, 또 필이 또 달라서 똑같이 할 수는 없고, 그래서 그냥 느끼는 대로...”라고 답을 하는 모습에서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일의 진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양준일 팬미팅에서 ‘양준일이 시대를 앞서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양준일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으면 앞서가는 것이에요.”

너무나 멋있는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말은 정신의학적으로도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흔 개가 넘는 연재 동안 끊임없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던졌던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다. 수많은 꼰대들 속에서 ‘다름’을 지키기 어렵다면 이 두 질문을 꼭 자신에게 던져 보도록 하자. 

‘일준아, 정말 진심이니?’ 
‘일준아, 지금 여기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니?’

글을 마무리하며 필자도 다시 한번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 두 질문에 답을 해본다면 어떨까? 이 두 질문에 ‘yes'라고 답을 할 수 있다면, 세상이 당신에게 뭐라 뭐라 해도 당신은 잘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Who am I.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그거면 됐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