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와 체중 증가

[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부작용의 대명사 TCA와 MAOI 항우울제는 제외하고 이야기한다. TCA는 이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여러 이유로 살을 찌게 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히스타민 등은 모두 작용이 강화되면 식욕을 감소시키고, 작용이 억제되면 식욕을 증가시킨다. SSRI나 SNRI 등으로 대표되는 항우울제의 작용 기전은 사실 세로토닌의(SNRI의 경우 노르에피네프린도 포함) 활성을 증가시키는 방식이다.

지금은 다른 부작용으로 퇴출되었지만 수년 전까지 사용되던 '리○틸'이라는 약은 세로토닌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약물인데, 식욕억제제로 사용되었다. 현재도 강력한 SSRI 항우울제인 플루옥세틴(fluoxetine)은 우울증 치료만이 아니라 신경성 폭식증의 치료제로도 쓰인다. 체중 감소와 식욕, 폭식 억제 효과 때문이다. 

 

그럼 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이전보다 식욕과 체중 증가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는가?

한 가지 설명은, 환자들이 우울증을 앓던 시점에서는 그다지 식욕이나 무언가를 먹는 데에 즐거움이 없었고, 그래서 체중이 감소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호전이 시작되면 식욕도, 먹는 즐거움도 회복된다. 아무래도 전보다는 많이 먹게 되고, 의식적으로 식사량을 조절하며 운동 등으로 체중을 관리하지 않는 한, 원래 그랬어야 할 체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늘씬한 이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일단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비만 클리닉 진료로 체중조절을 원하는 많은 환자들의 진료도 함께 보고 있지만, 결국 장기적 체중조절의 왕도는 식욕보다는 조금 적게 먹고, 내 의욕보다는 조금 더 움직이는 것이더라는 걸 자주 느낀다.

 

차라리 약 안 먹고 다시 우울해져서 살 빠지는 게 낫다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담당 선생님과 상의하면 된다. 파록세틴(paroxetine)이나 멀타자핀(mirtazapine) 등은 다른 약보다 유난히 체중 증가 문제가 흔한 약물이다. 혹시 그런 성분의 약을 투약 중인지 상의하고 약을 변경해보는 게 낫다. 부프로피온(bupropion) 등은 세로토닌보다는 도파민의 활성도를 증가시키는 방식의 항우울제로 체중 증가의 부담이 현저히 적은 편이다. 최신 치료제인 아고멜라틴(agomelatine)이나 브린텔릭스(brintellix)도 낮은 체중 증가율을 내세우고 있다.

특별히 항우울제를 탓할 것은 없다. 같은 우울증 치료 효과를 내면서도 체중 증가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더 낮은 항우울제로 교체하고, 자기 관리에 충실한 다른 사람들처럼 식사량과 운동량, 생활 습관 교정에 신경 써야 한다.

항우울제와는 상관없이, 치료 초기가 지나고도 야간에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괜히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야간에 충동적인 야식이나 폭식을 하는 방식으로 체중이 증가하고 있다면, 항우울제보다는 다른 약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항우울제의 간접적인 효과로 식욕이 증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항우울제 탓을 하기는 어렵다. 살이 찔까 두려워서 먹는 재미조차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우울증을 치료하지 말고 내버려 둬야 하나?

확실한 사실 한 가지, 관리하지 않는 한 누구나 살이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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