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어려움

“여보. 내가 설명할게. 이해하기 쉽진 않겠지만…"

아내는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구급대를 불러놨어요."

“뭐라구?"

“영혜도, 당신도 치료가 필요하잖아요."

“… 나한테 정신병원에 들어가라는 거야?"

- 한강, ‘채식주의자' 145-146쪽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중 한 대목이다. 영혜는 채식만 고집하는 조현병(정신분열병)으로 정신병원에 여러 달 입원 후 퇴원했다. 영혜의 형부(인혜의 남편)는 비디오 예술을 한다며 영혜와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정사를 나눈다. 이를 비디오로 촬영했는데, 다음날 아침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이를 발견한다. 인혜는 남편과 동생 모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구급대를 부른다. 하지만 남편과 동생은 입원을 거부한다.

 

인혜는 남편과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을까? 환자는 입원을 거부하지만 정신과 소견 상 입원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진행할 수 있다.

 

인혜는 남편의 부인이므로 보호의무자 자격이 있다. 하지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진행하려면 보호의무자 2명이 필요하다. 보호의무자가 1명인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이 경우 남편의 부모님이 살아있으므로 반드시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인혜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시부모님에게 남편의 상태를 설명하고 입원에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방금 전까지 남편을 정신병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시부모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남편을 입원시킬 수 없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진행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남편이 달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입원이 훨씬 절박하다. 멀쩡했던 남편이나 아내가 갑자기 타인을 죽이려고 하거나 자해를 하려고 하는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상황에서 보호의무자 요건을 갖추기 위해 가족이나 친척에게 전화를 해서 동의를 구하기란 너무 어렵다. 급한 마음에 구급차를 불러 정신병원에 가더라도 입원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문전박대 당할 수 있다. 입원이 안 된다면 타해나 자해의 위험성이 있는 가족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환자의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동생인 영혜는 입원시킬 수 있을까? 인혜는 영혜의 언니지만 함께 살지 않으므로 보호의무자가 될 수 없다. 부모님은 영혜의 입원에 동의하지만 지방에 살고 있어서 서울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부모님이 올라오는 동안 영혜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영혜는 이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니 그 병원에 가면 입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병원에서 이미 알고 있는 환자라도 정신보건법에 나와 있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서류를 다시 갖추지 못하면 입원이 안 된다.

사진 MBC

보호의무자 2명이 있다고 해도 이를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환자가 위협을 하거나 도망가려고 할 때, 보호자가 서류를 뗄 수 있을까? 급하니까 우선 환자를 입원시키고 바로 서류를 떼러 갔다 오면 안 될까? 안 된다. 입원하는 시점에 서류가 필요하다. 영혜처럼 이전에 입원한 기록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안 된다. 어제 퇴원했어도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환자를 입원시켜야 하는 상황이 평일 저녁이나 주말처럼 동사무소가 운영되지 않는 시간이라면 서류를 준비하기가 더욱 어렵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서류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동안 정신과의사들은 환자를 입원시켰다. 입원이 지체되는 시간만큼 환자의 자해 및 타해 위험성이 높아지고 가족들은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겪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검사들이 서류가 준비가 되지 않은 환자들을 입원시킨 정신과의사 수십 명을 기소하면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절박한 가족들은 ‘오늘 밤만 병원에 있게 해주면 내일 아침 서류를 떼오겠다'거나 '다른 보호의무자도 곧 올 것이다’ 애원하지만, 입원을 거절당하고 있다.

 

‘채식주의자'에서 인혜의 남편과 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아마 시골에 계신 인혜의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올 때까지 남편과 동생이 잠자코 기다리다가 병원에 갔을 것이다.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이나 경찰의 동의가 필요한 응급입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차 역시 쉽지 않다. 여러분이라면 인혜처럼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여러분의 가족을 자해와 타해의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