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의무와 방어설명

사진 픽사베이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부친이 대장 용종으로 종합병원 소화기내과에 입원하여 용종 절제술을 받으신 적이 있다. 당시 난 보호자 자격으로 용종 절제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술 동의서에 서명한 기억이 있다. 의사가 된 지금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내시경 치료 중 하나이지만, 그 당시 출혈, 장절제술 가능성,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 그로 인한 응급수술, 무늬만 의대생이었던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었고, 학교선배였던 당시의 담당 주치의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와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 쯤 있을 것이다.

수술 또는 시술에 관한 설명을 의료진으로부터 받고 난 후 환자와 보호자들은 대부분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보통 수술이나 시술과정에 대한 설명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로 인한 예견된 위험성과 합병증에 대한 설명이 충격과 공포 및 불안감으로 엄습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의사가 되고, 수련기간을 거치는 동안 필자의 부친은 같은 질환으로 다시 한번 내시경 치료를 받으셨고, 당시의 나는 거의 같은 내용의 설명을 들었지만, 10년 전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의사가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치료과정에서의 의료진의 ‘설명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를 잘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의료분쟁에 대한 소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점점 의료진들은 각종 수술과 시술의 위험성에 대해 좀 더 강한 어조로 최대한 방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설명을 듣고 나면 10년전 내가 그러했듯 많은 환자 및 보호자들은 ‘이 수술을 하는 것이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종합병원 전공의 시절 필자의 경험에도 가끔은 너무 비특이적으로 강조되어 설명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설명을 하는 건지 단순히 위험성에 대한 겁을 주고 있는 것인지, 설명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설명의무가 강조되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일임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수술에 관한 거짓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종종, 너무 방어적으로 그 위험성과 합병증에 대한 쪽으로만 너무 강조되어 설명되게 된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이에는 필자가 생각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의학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 전후 사정 및 의학적인 발생가능성 등은 배제된 채 마치 모든 것이 의료과오인 마냥 보도되는 일부 언론, 의료계의 블랙 컨슈머 (Black consumer)들, 그로 인한 파생된 국민들의 의료진에 대한 근거 없는 막연한 불신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도 100%라는 것은 없다. 모든 수술과 시술에는 그에 따라 크고 작은 위험성들이 있으며, 이들은 항상 발생 가능하다. 아무리 숙련된 의료진이라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치료과정에서 예견되는 위험성이나 합병증 들이 발생하였을 때 모든 것이 ‘의료사고’라는 단어로 치부되어, 실제 사실과는 달리 모든 것이 의료진의 일방적인 과실로 비춰지는 것이 환자 및 보호자들의 불신을 키우고, 그로 인해 점점 더 이런 설명들이 가능하면 위험하게, 방어적으로 설명하게끔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입법정책연구원과 리서치미디어스가 공동으로 시행한 ‘8대 전문직 신뢰도’ 설문조사를 보면 전문직 중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17.9% 였다. 다른 전문직에 비해 높은 수치이지만, ‘잘 모르겠다’ 라고 응답한 50.5%의 비율을 보면, 국민들의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물론 당연히 설명은 해당 수술이나 시술 등의 침습적인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가능한 점들을 이야기하지만, 여러 위중한 문제들은 그 발생확률이 몇 퍼센트 정도로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 중 여러 부분은 발생 이후에 적절한 대처로 인해 교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재 치료법으로 인정 받고 있는 수술 및 시술은 수많은 경험과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안전하며, 그 이득이 위험성 보다 아주 높은 것들이다.  ‘First do no harm’ 의료진들은 이 문장에 항상 충실 하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의료진들은 반드시 필요하고 환자에게 분명 이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치료 행위를 시행한다. 분명 치료계획과 시행하게 될 침습적인 치료에 대해 자세하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환자 및 보호자가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원래의 바람직한 취지와는 달리, 방어적 설명 그에 따른 방어진료,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피하기 위해 시행되는 과잉된 일부의 진료, 이 모든 것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파생된 오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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