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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아이들의 장래 운명이 결정된다
이시형 정신의학신문 고문 | 승인 2016.10.18 09:57
사진 픽사베이

과잉염려는 천재를 장애아로 만든다

 

장애 대신 개성적인 아이, 독창적인 아이로 불러야 한다.

그게 안 되겠다면 ‘개성 있는 문제아’ 쯤으로 해두자.

어른들의 보는 시각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달라진다.

 

아이들에 관한 한 요즈음 엄마들은 걱정이 많다. 공부를 너무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이다. 친구가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 너무 먹어도 탈, 안 먹어도 탈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조금만 다르면 걱정이다. 요즈음 엄마들은 아는 것도 많아서 진단도 잘 내린다.

 

“과보호성 모성애 결핍증이라는데 이 진단이 맞습니까?”

친구 없이 주로 장난감과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겉으로 보기엔 얌전한 아이였다. 엄마가 계속 다그쳐 묻는다.

“유명한 상담소에서 붙인 진단인데.....”

초조한 표정이 역력하다.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난 그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깜짝 놀란다.

“어머나, 큰 병입니까? 이 박사님이 모르시면.....”

불안한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오히려 아이가 조용히 엄마 손을 잡아 준다. 몇 가지 검사도 하고 다른 선생님의 의견도 물었다. 결론은 그저 ‘얌전한 아이’였다. 굳이 진단을 붙인다면 과잉 염려증 정도. 물론 아이에게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말이다.

 

상담실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물론 조기 진단은 중요하다. 문제가 심각한데도 모르고 지내는 어머니보다야 낫다. 하지만 과잉 염려는 금물이다. 발달 장애, 정서 장애, 성격 장애, 학습 장애, 행동 장애..... 장애 종류만 해도 수없이 많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어떤 아이도 그 중 하나에 걸리게 되어 있다. 아무리 ‘정상적인 아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장애’라는 의미를 냉철히 따져 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장애란 어떤 기준에 못 미칠 때, 혹은 어떤 틀에서 벗어날 때를 말한다. 헌데 그 기준이며 틀은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짰느냐. 세상의 어른이다. 부모나 교사가 자기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기준에 따라 설정해놓은 틀이다.

 

*정신과에서 말하는 ‘장애’는 엄격한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질병 상태이다. 이 기준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정신과 진료에서 진단을 내리는 과정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요즘은 이런 ‘장애’라는 단어가 전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쓰이는 경향이 있다.

 

공부 시간엔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고 오직 공부 생각만 해야 한다. 이게 어른이 만들어 놓은 틀이요, 기준이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가차 없이 장애라는 딱지가 붙는다. 공부 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밖을 보면 아이는 정서 장애다. 선생님이 물어도 대답을 못하고 책상만 보고 앉은 아이는 성격 장애요, 그 학과에 흥미가 없어 성적이 나쁘면 학습 장애다.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아이의 사정은 물어보지도 않고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장애라는 진단을 서슴없이 붙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획일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가치관도 다양해졌다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똑같은 TV를 보고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신문까지 똑같다. 획일적인 학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입은 옷, 신발, 가방, 음악, 게임, 음식까지 모두 같다. 더구나 우리에겐 아직도 동질적인 것을 강요하는 농경민의 잠재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것이 이질적인 것, 개성적인 것, 다양성을 배격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같아야 된다는 어른의 강박증이 더욱 획일적인 틀을 고집하게 만든다. 이 기준에 미달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면 모두 장애다. 어른들은 장애란 진단을 내리는 데 각별히 주의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장애라는 딱지가 붙으면 진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 속엔 멀쩡한 아이들도 많다. 천재적인 아이들도 물론 섞여 있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라면 그 틀에 맞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이라면 몰라도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는 아이가 어찌 그 틀에 맞을 수 있으리요. 불행히도 우리 교육은 그 틀에 집어넣으려고 온갖 무리를 다하고 있다. 그러다 개성, 독창성을 억압 말살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 대신 개성적인 아이, 독창적인 아이로 불러야 한다. 그게 안 되겠다면 ‘개성 있는 문제아’ 쯤으로 해두자. 어른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아이들의 장래 운명이 결정된다.

 

 

이시형 정신의학신문 고문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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