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욕구와 젠더 갈등이 혼재돼 집안일을 두고 싸움 일어나

‘부부싸움(La querelle du ménage)' 출처: 파리 유럽지중해문명 박물관

파리 유럽지중해문명 박물관에는 ‘부부싸움(La querelle du ménage)'이라는 19세기 미술작품이 있다. 그야말로 집안일(ménage)을 두고 싸운다는 뜻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업주부 또는 맞벌이부부 형태와 상관없이 집안일 분배에 대한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부부는 사소한 집안일로 다툼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1. 돌봄 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 때

가사분담은 종종 부부간에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잘 정돈된 집에 들어서면 따뜻한 환대와 편안함을 느끼듯 반대로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 어질러진 집안에서는 돌봄 받지 못한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배우자에게 집안을 돌볼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와 연결돼 있다. 어질러진 집안을 보며 이런 욕구가 무시되고 자신이 방치됐다고 느낄 때 배우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2.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

한국에서는 집안일 때문에 부부의 갈등이 극적으로 일어나는 때는 아마 명절 전후가 아닐까 싶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매년 명절이 지난 다음 달 이혼 신고 건수가 크게 증가를 한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여성에게만 편중된 가사노동과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성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평소에 쌓여온 감정이 이혼이라는 극적인 상황으로 나타나게 한다.

비단 여성이란 이유로 집안일을 떠맡는 상황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슬 가장 밑에 있는 중국의 조선인, 동남아 이민 여성 등이 적은 인건비로 집안일을 맡고 있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가부장제를 포함해 권력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종차이, 빈부격차는 자연스럽게 여성, 약자에게 집안일을 그들의 몫으로 미룬다.

3. 감정상태를 반영하는 가정환경

가정은 내면세계가 가시적으로 펼쳐진 공간이다. 자기 통제가 되지 않은 감정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널어진 옷가지들로 표현될 수 있다. 또는 불안과 강박이 강하다면 가족 구성원들의 편리보다 깔끔함, 청결함으로 통제하려는 태도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가정은 사회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1차적 욕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쉽다.

4. 부부간의 헤게모니 싸움

가사분담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를 통제하려는 갈등이 표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물건을 관리하지 않거나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상대에 저항하는 것을 표현한다. 권력과 지배력을 얻기 위한 시도는 종종 방치와 배신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집안일을 둘러싼 부부싸움의 이면에는 위와 같은 이유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배우자와 집안일 분배 문제로 자주 다투거나 집안일이 갈등을 촉발 시키는 단초가 된다면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서로 다른 관점이 나타날 수도 있고 개선을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가사 문제인 만큼 일상에서 부딪치면 피하지 말고 즉각적인 대화로 갈등을 풀어보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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