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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우울하고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독자기고 | 승인 2019.10.04 02:36

지난 8일부터 우울증약은 완전히 먹지 않기 시작했고, 10일에 치료가 끝났어요. 그날 처방된 약 없이 병원을 나서며 접수 데스크 선생님께 박수를 받았는데 감사하고 졸업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진료를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 앞에서 기뻐하는 것이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이 어떤 연유로 진료와 상담이 필요하신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또한 그랬듯 어쩌면 눈에 보이는 질병과 투병하는 것보다도 고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축하까지 받았는데 또 언젠가 힘들다며 찾아와서 염치없이 엄살을 부리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힘들고 괴로운 것만 털어놓으면 되던 때와는 달리,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제게 무엇이 궁금하실까 오래 생각해보았어요. 괴로울 때는 안 쓰려고 노력해도 저절로 쓰게 되던 글인데, 좀처럼 손이 안 떨어지고 무엇을 전해드려야 하나,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많이 고민이 되었어요. 손바닥만큼 작지만, 제게는 온 세상만큼 소중했던 약과(藥果) 같은 글을 적어 나눠드리고 싶었어요.

 

사진_픽사베이

 

외과 치료처럼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완치되었다고 간단명료하게 말씀드리고, 그대로 따라 하면 나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하는 식으로 나은 것은 아니었어요. 마치 제가 고령의 환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딘가 괜찮아지면 또 다른 곳도 아프고, 여기저기 동시에 아팠다가, 완치라는 게 있을까? 의심하기도 하고, 많이 나은 것 같으면서도 언젠가 또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면서요.

불안이나 우울함에 빠진 상태는 수십 가지 방향제를 곁에 두고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를 튼 채로 운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너무 오랫동안 많은 냄새를 계속 맡다 보면 아무리 좋은 향기더라도 괴로운 것처럼, 한두 가지 고민과 불안은 삶을 살아가는 힘과 채찍이 될 수 있지만, 너무 많은 불안을 끌어안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좋게 느낄 수가 없고,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맞설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주파수를 맞추는 중인 라디오는 들릴 듯 들릴 듯 웅얼웅얼하면서도 정확히 들리지 않고 좋은 것들을 감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많이 우울하고 힘들 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주파수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상대방이 나에게 전해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더라도 선명히 와 닿지도 않고요. 조금만 더 주파수가 맞춰지면 목소리의 높낮이와 숨소리까지도 들리는데 말이에요.

코가 마비되고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불안과 우울을 겪는 자기 자신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차멀미는 나서 죽을 맛인 데다가 창문으로라도 뛰어내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계속 타고 있는데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목적지는 어디인지조차도 알지 못하니 그 고통이 내일 끝날지, 모레 끝날지, 아니면 몇 년이고 계속될지도 모르는 상태니까요. 잠시 멈춰 환기도 시키고,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서라도 한두 가지 방향제만 남기고 미련 없이 다 버려두고, 라디오만 다시 맞추고 출발해도 훨씬 더 수월할 텐데, 앞만 보고 가는 데에 마음이 급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조차 몰라서 그럴 수 없었어요.

수십 가지 방향제를, 불안을 다 버리기 위해서, 스스로 계속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하는 것과 그 원인을 알아채려 노력했고,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 중에 틀린 감정은 없다고 말씀해 주신 게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다른 사람 생각을 많이 하는 성격 덕분에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에, ‘저 사람이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하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애쓰고, ‘내가 이런 말은 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겉으론 위로해줘도 속으로 비난할 것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면,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줄 걸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이면 금방 진정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시끄러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위로는 전혀 전해받을 수 없었는데, 내내 잡음만을 크게 틀어놓고 있다가 선명하게 잘 들리고 편안한 채널로 주파수가 맞춰진 기분이에요.

 

제 생각에는 약물치료와 상담 치료가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약물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상담하며 누군가와 차분히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엔 약을 오래 먹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고,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어려웠어요. 불안한 마음을 지금처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기까지 많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라디오 잡음이 더 커지기도 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도 하는 것처럼 오히려 걱정이 더 늘기도 했어요. 우울함에 지쳐도 언젠가는 분명 더 좋아지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도 가끔 우울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다시 약을 먹어봐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지금 글을 적으면서도 내가 이런 글을 적을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떤 곳에 글을 투고한다는 것이 두려운 마음도 들어요. 물이 가득 찬 수조를 힘껏 한번 흔들면 한동안 출렁거리며 이리 넘쳤다, 저리 넘쳤다 하는 것처럼 마음이 출렁거리고 괴로워요. 그래도, 괜찮다고, 누구나 마음이 안 좋기도 하고 좋기도 한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언젠간 또 잔잔해질 거라고요.

 

독자기고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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