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일본의 신화에서는 혼돈의 태초에서 여러 신들이 탄생한다. 그 중 남매인 이자나키와 이자나미는 결혼하여 불의 신을 낳았고, 출산 중에 이자나미가 죽자, 이자나키는 그녀를 따라 저승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저승에서 변모한 이자나미의 추한 모습을 보고 이자나키는 도망쳐 나왔고, 저승의 더러움을 씻어내고자 강에서 얼굴을 씻었다. 강에서 이자나키가 왼쪽 눈을 씻자 아마테라스(태양신)가, 오른쪽 눈을 씻으니 츠쿠요미(달의 신)가 태어났고, 코를 씻으니 스사오노(바다와 저승의 신)가 탄생하였다. 이후 일본이 건국되기까지 아마테라스와 스사오노,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갈등이 수없이 거듭되었다.

 

수많은 나라와 문화권에서는 모두 각각 나름의 건국 설화와 신화를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 구전되어 내려오고, 후세에 이르러 변조되고 추가된 내용들이 많지만 각자 어느 정도씩은 자기 문화권의 역사 형성과정의 얼기와 핵심적인 민족사상을 녹여내고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민족의 신격화와 뿌리에 대한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들이지만 말이다. 그 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의 설화, 신화가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부분은,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분쟁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들의 갈등, 신과 인간의 갈등, 내세와 현세의 갈등들을 포함하여 말이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설화에서 스사오노와 아마테라스의 갈등이 그랬고, 중국의 삼황오제 중 헌원씨와 치우씨와의 치열한 싸움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들 또한 이러한 다툼과 갈등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단군설화는 이러한 보편적인 건국설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의 이야기 형태를 가지고 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고,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속에서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는다. 그러나 환웅은 인간들과 갈등하지 않으며, 호랑이, 곰과도 다투지 결코 않는다. 곰과 호랑이를 모시는 토템 부족 간의 대립과 우위 쟁탈에 대한 설화적 묘사 역시 곰과 호랑이 사이의 다툼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호랑이 스스로 굴 속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할 따름이다. 인간이 된 곰은 아이 배기를 기도하여, 환웅이 인간으로 변해 단군을 낳았고, 모두가 알 듯 단기 0년 단군 왕검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는 고조선을 건립하였다. 단군 신화에서는 조화와 평화를 중요시하는 우리 민족의 합일(合一)의 사상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기본법 제 1장 제 2조에 명시된 교육 이념에서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홍익인간은 환웅이 땅에 내려와 낳았다는 단군왕검이 조선을 개국한 이념이다. 단군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통하여 홍익인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이를 퍼뜨리려 하였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실제 역사적으로 언제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전설화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우러짐’에 대한 희구이다. 고조선의 건국 설화와 홍익인간의 이념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구전설화의 그것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근본이념을 이루고 있는 광의적 ‘조화’에 대한 민족적 영혼을 보여주고 있다.

 

안팎으로 끊이지 않는 국론의 분열과, 가속화되는 북한과의 대립.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과 이에 맞서는 도발적인 정부 대응, 그리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주변국들의 목소리들. 연일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국정감사의 파행과 서로의 비리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얼룩진 언론. 홍익인간의 거국적인 민족적 이념이 무색하게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서로를 등지고 갈라서고 있다. 2016년. 단기 4349년의 개천절이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는 것은 단지 고루하고 신화적인 옛날이야기에 대한 기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수천 년을 다듬어온 이해와 합일, 조화로의 발걸음을 다시 재정비할 때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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