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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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렇게 힘든데, 뭐 때문에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고, 그냥 다 허무한 것 같아요.”

 

“선생님은 뭐 때문에 살아요?”

 

많은 사람들이 괴롭다, 고통스럽다는 것을 넘어서 공허감과 무의미한 감정을 호소한다. 헬조선, 오포세대 등등 모두 사회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말하지만 한층 깊은 곳에는 무의미함을 담고 있다.

쾌락의 시대, 소유의 시대를 살며 더 자극적인 것을 더 많이 원하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힌다. 화려한 연예인들의 삶,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재벌들의 삶을 각종 매체를 통해 생생히 접하며 부러워하고 욕망하지만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계가 정해진 삶, 비교가 되는 삶, 불평등한 삶은 역사가 생겨난 이래로 없었던 적이 없다. 한계가 없는 삶, 비교가 없는 삶, 평등한 삶은 그야 말로 유토피아(현실적으로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없는ou-','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가 아닐까? 그런데 왜 요즘에서야 무의미에 대해서 많이 호소할까?

 

1.

‘정말 심각한 문제는,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삶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 알베르트 카뮈

 

정치, 사회, 경제적 부분이 개선되고 불평등한 부분이 해결되면 모든 갈등이 풀리고,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꿈이다.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유래가 없었던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생존의 의미는 가장 빈곤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전통’이라는 것이 있었다. 설사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모두가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있었다. 또한 그 전통을 따르는 것만으로 그 삶은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삼년상을 치르는 효자, 죽은 남편을 끝없이 따르는 열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열사 등이다. 지금은 코웃음을 칠 이야기다. 쾌락과 소유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전과는 달리 더 이상 그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전통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깨뜨린 혁신적인 삶, 그것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을 더 가치 있게 바라본다. 합리적이고 기능적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만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동물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 동물은 본능적인 부분의 충족만으로도 생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정신적인 부분이 함께 충족 되어야 생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정신적인 부분의 길잡이를, 다시 말해 ‘의미’를 전통이 대신 해주었는데 이러한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2.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 빅터 프랭클

 

이런 전통이 제 기능을 못하는 사회에서는 개인들은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달리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쾌락과 소유의 시대에는 ‘돈’의 많고 적음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인들 역시 돈에 대한 의미 부여가 엄청나다. 개인들은 돈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현대인들은 다른 중요한 가치들과 돈이 비교되어졌을 때 다른 가치들의 중요성은 감소되었다고 느끼고 돈의 중요성은 증가되었다고 느낀다. 돈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만능열쇠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개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돈이 있으면 삶의 의미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된 사람들은 공허감을 채울 수 없다.

 

돈과 쾌락은 목적이 아니다. 돈과 쾌락은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목표는 이루더라도 만족감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돈과 쾌락은 삶의 의미를 좇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목적의 달성을 통해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목적의 성취가 돈과 쾌락을 느낄 이유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만약 이런 것들이 필요할 이유가 있다면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돈과 쾌락을 넘어 행복 역시도 목적을 향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설사 돈과 쾌락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시련이라도 이겨낼 힘이 있다.

 

*목적과 목표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목적과 목표는 과정 속의 만족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시험 합격이 목표인 사람은 공부가 괴롭지만, 지적인 성취가 목적인 사람은 공부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울 것이다. 시험 합격은 삶의 의미가 될 수 없지만, 이 지적인 성취는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사회적인 전통의 소실, 개인적인 잘못된 ‘의미’의 추구가 무의미의 향연을 만들었다. 이런 무의미의 향연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돈과 쾌락 심지어 행복마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면, 삶의 공허, 무의미함을 벗어나기 위해 좇아야할 ‘의미’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우리에게 ‘의미’가 되어 주었던 ‘전통’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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