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전 연재에서 아이유의 이야기를 통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이유는 인기가 높아지고 일이 잘될수록 불안해졌다고 표현했었죠.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불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불안이라는 감정은 많은 사람이 쉽게 경험하는 감정이기도 하고, 또 많이들 불편해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저와 상담했던 많은 분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토로하시면서 어려움을 호소하시곤 했습니다. 이럴 때 제가 자주 드렸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피아 게임을 하지 마라.’였습니다.

조금 생뚱맞죠? 하지만 마피아 게임 안에서 우리는 ‘불안’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피아 게임을 하면 시민과 마피아로 나뉘어 게임을 진행하죠. 그중에 마피아를 찾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게임 진행 중, 시민에 걸릴 경우, 우리는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피아에 걸릴 경우, 이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지요.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요? 마피아와 시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에 기인한 현상입니다. 시민에 걸릴 경우, 우리는 겉으로 시민이라고 하면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불안을 잘 유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피아에 걸릴 경우는 어떻습니까? 난 마피아지만, 끝까지 시민인 척을 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행세를 해야 하는 것이죠. 절대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이 내재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게임에서 드러난 이 차이는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경우, 우리는 자신의 못난 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 노력이 불안을 더 가중시키고 불안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감도 더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요. 그렇게 우리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해지고, 또 자신감이 떨어지고, 또 불안해지고, 하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유가 “불안하면서 근사하게 보이며 사느니, 초라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부족한 나 자신이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면 불안이라는 커다란 감정이 나를 집어삼켜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게 되면, 더 이상 불안해지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들킬 게 없으니까요. 겉과 속이 같기 때문에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이유는 거품이 다 날아가도 괜찮다는 각오로,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 그대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각오이지요. 비록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거품 속에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불행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니까요.

게다가 여기에 더 큰 보너스가 있습니다. 저번 연재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마음속 깊은 심지에서 출발할 때 내 잠재력은 100% 발휘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굳이 내 옷이 아닌 옷을 입고 평생 불안해하면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잠재력만 100% 발휘하면서 살 수 있어도 그리 못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내 잠재력을 내가 몰라주고, 또 내 깊은 마음속 심지를 부정하면서 살기 때문에 인생이 꼬여져 가면서 악수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능력보다 못하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다수의 분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임상경험입니다. 저는 100% 믿습니다. 내 마음속 깊은 심지에서 출발하고 내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저와 오랜 기간 상담을 하셨던 내담자분께서도 상담 과정 중 가장 많이 언급했던 단어 중 하나가 ‘거짓 감정’이었습니다. 이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자신을 과소평가하시면서 자신감이 부족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늘 ‘거짓감정’으로 살아왔던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짓감정’들을 조금씩 인식하시면서 삶에 있어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든 싫게 보든 연연하지 않겠다며,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 나’로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커다란 용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약한 자신을 들키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셨거든요. 그런데 내가 먼저 내 안에 있는 마음들을 알아봐 주고 오픈해주기 시작하니까,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겉과 속이 일치해가면서 내담자분은 상당히 심적으로 평안을 얻으셨습니다.

심지어 공황장애를 앓고 계셨는데, 약물을 복용하면서도 가끔 공황발작으로 괴로워하셨지만, 지금은 약물 복용 없이도 한 번도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라는 큰 카테고리의 일종이거든요.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의 기저에는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감정이 ‘불안’이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증(불안장애가 포함되는 경한 정신과 질환)의 원인을 ‘무의식 속의 실제 나’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괴리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 관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기술했듯이, 마피아 게임 같이 단순한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스스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지를요. 그런 것들을 찾아가다 보면 내 안에 잠재한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과정 안에는 내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용기가 덤으로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괴로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만큼은 아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평생 ‘마피아 게임’ 하면서는 살지 말자고요. 막상 마주해보면 나 자신은 있는 그대로 나쁘지 않더라고요. 필자인 저 자신도 오랜 기간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살았었거든요. 마피아 게임에서 꽤 많이 해방된 지금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편안하게 느껴진답니다. 저도 겪었고 제 내담자들도 겪었던 일이라 독자분들과 꼭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더 행복해지시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