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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고통스러운 유산(painful legacy) - 부모의 정서적 트라우마는 대물림될까?
양병찬 | 승인 2019.07.28 07:49

부모의 정서적 트라우마(emotional trauma)는 후성유전학을 통해 자녀의 생물학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부모를 가진 새끼들은 무모한 행동을 하고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rauma to a mother mouse can alter the behavior of her descendants over multiple generations, like this father, son, and grandson. PIOTR PIWOWARSKI/ © Science


▶ 파키스탄의 SOS 어린이마을 고아원(SOS Children's Villages orphanage)에 사는 어린이들은 고달픈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다. 많은 어린이들은 아버지를 잃었는데,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어머니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궁핍한 미망인들은 종종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의 고아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가능한 한 최선의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피난처와 헬스케어를 제공하고, 지역의 학교에 보낸다"라고 취리히 대학교의 알리 자와이드(신경과학자, 내과의사)는 말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린이들은 불안증과 우울증 등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과 유사한 증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심리적 부담을 넘어, 자와이드는 어린이들의 경험이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인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그는 고아원들과 제휴하여, '부모와의 이별이라는 정서적 트라우마가 미묘한 생물학적 변화(subtle biological alteration)를 촉발할 수 있다'는 참담한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를 설계했다. 그러한 변화는 매우 지속적이어서, 어린이들의 정서적 트라우마가 그 자손들에게까지 대물림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20년 전에만 해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개인의 경험이 자녀와 손주들의 세포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물의 경우, 스트레스, 추위, 고지방식이 만년(晩年)의 대사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트라우마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들 포함)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그들의 자녀들이 미묘한 생물학적·건강상 변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연구들의 시사점은 심오하다. 만약 우리의 경험이 자녀와 손주들에게 대물림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흡연에서부터 (가족을 갈라놓는) 이민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강력한 반증(反證)이 되기 때문이다. "이건 매우 끔찍한 일이다. 당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출되었던 상황이 당신의 질병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가 소멸되었다고 생각한 오늘날의 행동들이 우리의 고손·증손·현손주에게 대대손손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워싱턴 주립대학교(풀먼)의 마이클 스키너(생물학)는 말했다.

스키너 자신의 동물실험에서는, 후성유전체(epigenome)의 변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참고 1). 만약 트라우마가 사람들에게도 그런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촉발한다면, 그 변화는 정신질환이나 기타 건강상 문제의 고위험군 환자를 탐지하는 생체표지자(biomarker)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그런 유산(legacy)을 역전시키는 개입의 표적(targets for intervention)으로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 스트레스(physical stress)와 구별되는 정서적 트라우마가 후세에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유산'과 '후성유전학적 유산'을 구별하는 것이다. 전자의 비중이 상당한 듯하므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라고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의 요하네스 보하체크(신경과학)는 말했다.

또한 후성유전학 분야의 권위자들은 그런 아이디어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의 레이첼 예후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40명의 자녀들에 대한 연구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기초수준이 낮으며, DNA의 메틸화 패턴이 독특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트라우마가 유전성 변화를 초래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시기상조다"라고 밝히며, "언론의 지나친 보도가 '한 세대의 트라우마가 후세에게 영속적인 흉터를 남긴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절망적 내러티브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 연구결과에 대한 확대해석이 만연해 있다"라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귀뚜라미의 비유전적 대물림을 연구하는 캐서린 크로커(생물학)는 말했다. "후성유전학에 대한 대중의 통념은 검증될 수 없다."

자와이드는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초등학교에서 '고아원의 어린이'와 '부모가 있는 동급생'으로부터 혈액 및 타액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취리히 대학교와 취리히 연방공대의 이사벨레 만수이가 운영하는 연구실의 연구자로서, 그는 상실과 강제이별이라는 트라우마가 세포 수준에서 확인 가능한 표지자(identifiable mark at the cellular level)를 남겼는지 여부를 밝혀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친 대물림(transgenerational inheritance)을 진정으로 증명하려면, 고아들이 자녀를 낳을 때까지 다년간 연구해야 한다. 만수이가 생쥐에게 눈길을 돌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최근 어느 날 오후, 만수이는 깨끗한 실험복과 파란 위생화를 착용하고 취리히 대학교의 자기 연구실에 있는 어두운 방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 순간 밀려 나오는 한 줄기 따뜻한 바람에는, 동물의 사료와 사향이 혼합된 듯한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방 안에는 40개의 케이지가 놓여있었고, 그 속에서는 모두 수백 마리의 생쥐가 사육되고 있었다. "내가 이 방을 어둡게 하는 이유는, 낮에 작업할 때 생쥐들의 생체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예요." 만수이가 말했다. "이 생쥐들은 서른한 번째 코호트예요."

'대물림되는 형질이 모든 DNA 속에 들어있는 건 아니다'라는 만수이의 아이디어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질나는 초기 연구결과는 옥수수에서 나왔는데, 그 내용인즉 "동일한 DNA를 가진 옥수수에 나타난 형질(예: 알맹이 색깔)의 변이가 수백 세대 동안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그 연구결과는 초기에 논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유전학자들이 그것을 "19세기의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주장했던 비다윈적 아이디어의 부활"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생물들을 이용한 실험에서, 후성유전학적 대물림은 사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과 같은 단순한 생물에서, "변형된 RNA를 통해 한 번 침묵된 유전자가 80세대 동안 침묵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사례는 훨씬 더 극적이었으니, "포식자의 냄새에 노출된 물벼룩이 '송곳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갑옷으로 뒤덮인 머리'를 가진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쥐의 경우, 스키너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변질된 먹이, 낮은 기온, 독소에 노출된 부모들은 행동이 유별나고 몸무게가 무거운 새끼를 낳는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네덜란드의 겨울 기근과 관련된 것인데,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기근을 말한다. 식량이 부족할 때 임신한 여성의 자녀들은 직전에 태어난 또래들보다 일찍 사망했고, 비만·당뇨·조현병의 발병률이 높았다. 다른 그룹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생애 초기에(심지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기근을 경험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심장병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역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내전에서 포로생활을 한 병사의 아들들은 그렇지 않은 전우의 아들들보다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연구자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어머니의 건강'이라는 요인을 보정했다).

그러나 인간 연구는 (누가 봐도 뻔한) 반론에 직면했으니, 그 내용은 "트라우마가 후성유전학보다는 양육을 통해 대물림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포로생활 경험이 그 병사를 '의기소침한 아버지'로 만들었을 것이고,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아들의 삶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기근을 겪었거나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부모 슬하에서 성장한다는 것의 심리적 영향은, 자녀의 행동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반론에 답변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생쥐모델이다.

 

▶ 만수이의 연구는 2001년, 어린 시절 트라우마의 특정 측면을 재현하는 생쥐실험을 설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생쥐의 엄마를 새끼에게서 무작위적인 시간 간격으로 떼어놓고, 엄마를 튜브 속에 가두거나 물속에 빠뜨림으로써 양육을 훼방했다(튜브 속에 가두기와 물에 빠뜨리기는 생쥐에게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나중에 케이지에 돌아온 엄마들은 정신줄을 놓고 주의력이 산만했다. 그리하여 새끼들을 종종 외면하고, 격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새끼에게 전가했다.

(독자들도 짐작하겠지만, 만수이가 엄마 생쥐에게 고통을 준 것은 의도적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서 영감을 얻은 패러다임을 생쥐에게 적용하고 있어요. 우리의 목적은, 어린이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이해하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은 엄마의 새끼들이 어른이 되어 '변화한 행동'을 보인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만수이가 진정으로 놀란 것은, 변화한 행동이 '새끼의 새끼'에서도 지속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행동이 '스트레스의 악순환(사회적 대물림)'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즉, 어릴 때 트라우마를 받은 생쥐는 커서 '나쁜 부모'가 되어, 자기가 어릴 때 당했던 트라우마를 새끼에게 전가했을 거라는 거였다. 사실, 그런 사회적 대물림 사례는 인간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대물림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만수이는 부계혈통만을 연구했다. 그녀는 '트라우마가 없는 암컷'을 '트라우마가 있는 수컷'과 교배한 후, 수컷(아빠)을 엄마의 케이지에서 꺼냄으로써 아빠의 행동이 새끼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다. 새끼들이 젖을 뗀 후, 그녀는 (한배새끼들이 서로의 행동을 강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쥐들을 혼합된 그룹에서 사육했다.

그녀의 연구실에서는 이상과 같은 절차를 반복하며, 때로는 6세대까지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스트레스받은 아빠의 새끼들'은 '스트레스받지 않은 아빠의 새끼들'보다 무모한 행동(예: 공중에 매달린, 탁 트인 발판 위에 올라가 기웃거림)을 더 많이 하며, 물에 빠졌을 때는 생을 쉽게 포기하고 수영을 멈추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이것은 생쥐의 우울증 유사행동의 지표로 간주된다).

"만수이는 이 분야의 선구자임이 분명하다"라고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로마인 바레스(분자생물학)는 말했다. 다른 연구자들도 개념적으로 유사한 연구를 설계했다. 예컨대 수컷에게 변질된 먹이를 주거나 니코틴을 투여한 후, 수 세대에 걸쳐 대사적·행동적 변화를 추적했다.

"부모의 경험이 자녀의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마이클 미니(후성유전학)는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서 '어머니의 양육 차이가 자녀의 뇌발달에 후성유전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부모의 경험이 대물림될 수 있는 정도'를 연구했다. 중요한 것은 '정도'가 아니라 '메커니즘'이다."
 


@ Science


▶ 만수이의 연구실에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냉동고는 생쥐의 혈액, 간, 마이크로바이옴, 그 밖의 조직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10여 년간 수천 마리의 생쥐에게서 수집한 행동 데이터와 조직 샘플로, 80°C에서 보관되어 있다. 그녀는 트라우마의 생물학적 표지자(She hopes the biological marker)가 그 냉동고 속에 들어있을 거라 생각하며, 전모가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포유동물의 후성유전학에 대한 초기연구 결과 중 상당수는 DNA 메틸화(DNA methylation)에 초점을 맞췄는데, DNA 메틸화란 DNA에 메틸기(methyl group)라는 태그를 부착함으로써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직접적으로 유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포유류의 경우, 난자와 정자가 만나 배아를 형성할 때 대부분의 메틸화가 삭제되기 때문이다.

만수이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아직도 '메틸화가 모종(某種)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몰 비코딩 RNA(sncRNA: small noncoding RNA)」라고 불리는 '정보가 풍부한 분자'도 연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RNA는 DNA에서 전사된 다음, 리보솜에게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사로 활약한다. 그러나 세포 안에는 (단백질을 생산하지 않는) 짧은 RNA 가닥도 존재한다. 이 sncRNA들은 단백질을 생성하는 대신, 전령 RNA(mRNA)에 올라타 그들의 기능을 방해하거나 증폭함으로써,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증감(增感)시킨다.

만수이 등은 "스트레스가 sncRNA와 (sncRNA가 초래하는) 수많은 생화학적 변화(예: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의 수준, 염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정자 속의 sncRNA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그 이유는 "새로 생성된 정자가 (고환의 맨 꼭대기에 있는) 꼬인 관(管) 속에서 성숙하는 몇 주 동안, sncRNA가 매우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배아를 형성할 때, 변형된 sncRNA는 초기 단백질의 생산량을 바꿈으로써 (향후 진행되는) 수조 번의 세포분열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킨다. "그런 세포들이 접합자(zygote)를 형성할 때, 수십 가지 신호가 발생한다"라고 메릴랜드 대학교의 트레이시 베일(후성유전학)은 말했다.  "만약 아빠가 (엄마의 RNA에 영향을 미치는) sncRNA를 갖고 있다면, 배아발생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

베일은 "트라우마가 정자 속의 sncRNA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효과가 자녀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녀는 청소년기의 생쥐에게 수 주 동안 무작위적인 시간 간격으로 자극(예: 여우 냄새, 커다란 소음, 밝은 빛)을 가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그런 다음 생쥐의 정자와 그 새끼에서 sncRNA를 검사했다. 검사 결과 9가지 유형의 sncRNA에서 차이가 발견되었는데, 그중에는 'SIRT1(대사와 세포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을 조절하는 sncRNA'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유사하게 변형된 RNA' 분자를 만들어 초기단계의 배아에 주입해 봤다. 그랬더니 그 배아가 성장하여 성체가 되었을 때, 성체들은 (정자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변형된 RNA'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이 2세대들은 좁은 관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후 코르티코스테론(corticosterone: 코르티솔의 생쥐 버전) 수준이 낮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정자의 RNA가 변형되면, 새끼들이 어미와 똑같은 표현형을 갖게 된다"라고 베일은 말했다.

만수이도 (새끼였을 때 스트레스를 받은) 수컷 생쥐에서 유사한 RNA 변화를 발견했다. 그 생쥐들은 특정 sncRNA(miR-375 포함)의 수준이 높았는데, miR-375는 스트레스 반응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수이는 그런 분자적 변화가 (자신이 기술한) 대물림된 행동특성 중 일부를 설명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녀가 이끄는 연구팀은 한 실험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수컷의 정자에서 추출한 RNA'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부모의 수정란'에 주입한 결과, 태어난 새끼에서 동일한 행동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쥐 실험에서 원인(변형된 RNA)과 결과(변화한 행동과 생리학)가 확인되더라도,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모두 풀기는 -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 매우 어렵다. "후성유전학은 지난 5년 동안 먼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통제된 환경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베일은 말했다.

그러나 생쥐의 데이터를 확보했으므로, 만수이는 인간에게서도 유사한 변화를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녀는 네덜란드 병사들을 대상으로, 2005~2008년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기 전후에 채취한 혈액샘플을 분석했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 니스의 임상의들과 손을 잡고, 2015년 끔찍한 테러공격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혈액샘플을 분석하고 있다.

다른 연구자들은 병사들의 혈액에서 변형된 sncRNA를 발견했다. 예컨대 2017년 네덜란드의 연구자들은 2017년 전쟁의 트라우마에 노출된 병사들에게서 수십 가지 sncRNA 그룹의 차이를 발견했는데, 그중에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와 관련된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수이는 자신의 실험용 생쥐에서 그런 RNA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병사들의 샘플은 몇 년이 지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지 '생쥐와 인간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생쥐모델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의미를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트라우마의 유형에 민감하며, 삶의 여정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생쥐가 인간의 고통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최선의 접근방법은 생쥐모델과 가능한 한 유사한 상태를 경험한 인간집단을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 만수이가 파키스탄의 고아원에 눈을 돌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어린이들이 생애 초기에 겪은 혼돈은, 우리 연구실의 생쥐들이 겪은 것과 약간 비슷해요. 이를테면, 엄마와 뜻하지 않게 이별을 한다든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초기 연구결과는 고무적이다. "우리는 생쥐모델과 중복되는 결과를 얻었다"라고 자와이드는 말했다. 지난달 《bioRxiv》에 업로드한 출판전 논문에서, 만수이와 자와이드는 "고아의 혈액과 타액에서 sncRNA는 물론 지방산의 농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트라우마를 보유한 생쥐에게서 발견된 변화와 유사하다. "유사한 생체표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쥐와 어린이가 트라우마를 겪은 후 유사한 경로가 작동한다는 것을 시사해요"라고 만수이는 말했다.

만수이 & 자와이드와 개념적으로 유사한 연구('생쥐에서 인간으로')에서, 보스턴 소재 터프츠 대학교의 래리 페이그(생물학)는 케이지 메이트를 일상적으로 바꿈으로써 수컷 생쥐를 사회적 스트레스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생쥐들의 정자에서 특정 sncRNA의 수준이 변화하고(단, 만수이의 생쥐에서 발견된 sncRNA와 종류가 다르다), 그들의 새끼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은 생쥐'의 새끼보다 불안이 증가하고 사회성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그는 정자은행과 손을 잡고, 인간의 정자에서 생쥐와 동일한 sncRNA를 탐색했다. 또한 그는 '폭력적·역기능적 가족력'을 알아보기 위해, 정자 제공자들에게 불우한 유년기 경험(AC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ACE 점수가 높은 남성일수록, 정자 속 sncRNA의 프로파일이 생쥐와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연구결과를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 소재 알버드 아인슈타인 의대의 존 그릴리(유전학)는 "샘플 크기가 작고, 역학연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지적하며, 트라우마의 후성유전학적 대물림을 정면으로 비판해 왔다. "현재로서는 생쥐모델이 바람직한 선택이지만,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나는 연구자들에게 '예비적인 연관성연구(preliminary association study)를 대담하게 탈피하여, 결정적인 연구(definitive study)에 매진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아울러,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 만수이가 운영하는 연구실의 어두운 방에는, 생쥐를 사육하는 영역 밖의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케이지가 나란히 놓여있다. 하나는 실험용 생쥐를 위한 표준 케이지로, 크기는 구두상자만 하고 내부에는 나뭇조각이 흩뿌려져 있다. 대부분의 실험용 생쥐들은 이런 케이지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만수이가 사육하는 생쥐들도 대부분 그렇다.

그 옆에 놓인 2층짜리 럭셔리한 케이지에는 3개의 쳇바퀴와 하나의 작은 미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까만 털가죽에 핑크색 꼬리를 가진 생쥐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생쥐의 감각을 자극하고, 그들로 하여금 놀이와 탐색에 몰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참고 2).

만수이는 2016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처럼 풍부한 환경(enriched environment)에서 사육된 '트라우마를 보유한 생쥐'는 새끼들에게 트라우마 증상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비록 제한적인 데이터이지만, 이는 삶의 경험이 분자수준에서 손상될 뿐만 아니라 치유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만수이는 현재 확장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풍부한 환경을 적시(適時)에 제공하면, 트라우마에 의해 유도된 변화 중 일부를 궁극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만수이는 말했다.

'후성유전학적 변화의 가역성'을 시사하는 연구들은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둘러싼 암울한 내러티브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만약 트라우마가 후성유전학적이라면,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페이그는 말했다. 그년 10여 년 동안 생쥐들에게 놀이용 튜브, 쳇바퀴, 장난감, 널따란 케이지 등을 제공하며, 뇌기능에 '대물림되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를 수집해 왔다. "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부정적 환경의 영향은 가역적일 수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만수이는 대중강연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호언장담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자신의 생쥐모델에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그녀는 연구할 게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분야가 쾌속질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분야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3/6169/361
2.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59/6376/624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9/07/parents-emotional-trauma-may-change-their-children-s-biology-studies-mice-show-how

 

글쓴이_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 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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