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갈등이 점점 심화되면서, 유니클로 같은 일본 기업 제품 불매 운동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한일 갈등의 핵심은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보상과 사과에 관한 문제이다. 국내 정신의학 전문의들은 성노예 생존자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논문도 매년 한 편씩 발표하고 있다. 이 논문들 중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정신의학적 연구인 ‘위안부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연구(SK Min,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를 소개하려 한다.

 

사진_픽사베이

 

2004년에 출판된 이 논문은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26명을 대상으로 PTSD, 우울, 분노 및 정신 전반에 관한 검사를 수행했다. 당시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79세였고, 성노예로 끌려간 당시 나이는 13세와 16,17세가 76%를 차지했다.

외상 경험으로는 생존자 전원이 성행위를 반복적으로 강요당했으며, 61%는 구타와 고문을, 34%는 감금과 굶기기, 30%는 위협과 협박 그리고 다른 이가 죽임을 당하거나 죽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연구 당시 PTSD 진단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30%였지만, 현재가 아닌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전원이 PTSD에 해당했다.

이 연구를 통해 외상 후 60여 년이 지나도 PTSD가 나타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비슷한 연구로 나치 홀로코스트 유대인 생존자들도 50년이 지나서도 PTSD 등 정신장애를 보였다는 보고가 있다.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와 성별, 나이, 학력이 동등한 수준의 정상인을 비교했을 때, 나이, 결혼의 여부, 출산의 여부, 가족의 유무, 고문이나 구타의 빈도는 현재 PTSD 진단이나 증상 정도와 전부 관련이 없는 점이 특이했다.

이는 일본군 성노예로서의 경험이 너무 심각하여 다른 차이를 압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샤 검사에서는 폭력적 성적 피해에 대한 공포, 수치감, 절망감, 분노, 증오가 나타나며, 특이한 현상으로는 성과 폭력에 관한 반응이 나올 때 순간 지각의 정확성이 흐려지는 것을 보였다. 이는 생존자들의 분노가 매우 크나,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분노가 내재화되어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나,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이 분노가 폭발적으로 드러날 것임을 시사한다.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부인하는 망언을 할 때, 생존자들이 표현하는 분노와 증오, 눈물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고문 집행자가 무죄로 방치된 상태에 대한 분노를 느낀 사람이 정신적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기 쉽다는 과거 연구를 재확인시킨다.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원인이 수치심인 것도 있으나, PTSD 증상인 ‘회피’로 자신의 고통을 다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했다. 성노예 생존자가 정치사회적 보상을 받을 뿐 아니라 정신과 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후손들도 PTSD와 다른 정신장애에 대한 취약성이 있다는 보고처럼, 생존자의 후손들도 그 고통이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고, 또한 같은 민족에게도 정신적 외상이 된다며 저자는 논문을 마무리했다.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논문인 이 2004년 논문의 연구 대상은 26명의 생존자이다. 이 최초의 논문이, 2019년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들 중 가장 많은 생존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이다.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생존자들이 연구에 참가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사망하기 때문이다.

현재 남은 생존자는 21명으로, 언젠가는 모든 생존자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료는 전 전 세계에 있는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와 그 후손, 같은 민족들의 정신적 외상을 기억하고, 위로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공부함으로써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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