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곽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국 모즐리병원 정신과, MBBS MRCPsych]

 

근래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읽어보면 가슴이 아프다. 현재 영국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현지 환자들로 인한 안타까운 사건들을 여기서도 접하게 되지만, 영국 안에 설립되어 있는 정신건강시스템을 통해 한국보다 이런 류의 사건들이 덜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1983년에 창립된 정신보건법(Mental Health Act)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평가, 치료, 인권을 다루는 법이다. 이 법의 용도는 다양하지만, 특히 응급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40대 조현병 환자가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사고로, 자신과 세 살 되는 아들 그리고 예비신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찰 조사에서 이 환자가 복용하던 조현병 약을 끊은 지 2달 되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영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싶다.

 

사진_픽사베이

 

1. 조현병 환자가 복용하던 약을 중단하고 이로 인해 정신상태가 악화된다. 옆에서 지켜보고 우려가 되는 보호자는 환자를 일반의(가정의학과) 또는 매우 응급한 상황이면 응급실로 데리고 간다.

2. 일반의 또는 응급실을 통해 환자는 정신과 의사와 연결이 된다. 

3.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정신상태를 파악하고 “위험 평가”(risk assessment)를 하게 된다. 여기서 위험 평가란 대략 자신을 해할 가능성, 다른 사람을 해할 가능성,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4. 만약 의사가 보기에 환자의 정신상태가 우려되고, 어떤 위험 가능성이든 높다고 생각이 들면 환자가 치료를 다시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환자가 거부하는 경우,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이미 정신질환으로 인해 정신상태가 너무 악화되어있고, 판단 능력에 손상이 되었다면, 위에 말한 정신보건법을 통해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Section이라 부른다)

5. Section은 종류가 법으로 제정되어 있지만, 이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법은 Section 2이다. Section 2는 환자를 강제입원시켜 최대 28일 동안에 평가와 치료를 법적으로 허락한다.

6. 강제입원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처음 소견을 남긴 정신과 의사 외에, 두 명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전문가들은 환자를 처음 보는 정신과 의사와 공인된 정신건강전문가(AMHP: Approved Mental Health Professional; 보통 사회복지사)로 이루어진다. 이들 또한 따로 환자를 평가하고, 입원이 환자를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동의하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Section이 완성이 되고, 이 환자는 법적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7. 환자의 인권을 위해 입원 이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때는 국가에서 환자를 위해 선임한 변호사는 판사가 주재하는 법정에서 Section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을 보았을 때 중요한 부분은, Section 2의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정신보건법과 제일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인 것 같다. 물론 가능하면 보호자에게 왜 강제입원이 필요한지 설명을 하고 일을 함께 진행하겠지만, 급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는 결국 빠른 조치와 대응이 환자를 위해,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강제입원을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Section을 성공적으로 사용하려면,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경찰이다. 현재 한국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잘못 데려가면 고소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일을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환자는 필요한 치료를 못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Section 136 같은 경우, 공공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자타해 우려가 있으면 경찰이 법적으로, 강제로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이 안전한 곳은 보통 병원이고, 24시간 동안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이 기간 안에 정신과 전문의는 평가를 하고 상황에 따라 병동 입원 또는 퇴원을 시킬 수 있다. 법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성립되어 있기에, 영국 경찰들은 이 Section을 오용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경우들은 응급 상황 때 사용되는 법이다.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통 지역 사회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는 대부분의 환자들을 외래에서 보지만, 필요할 때는 집을 방문하여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때, 아직 환자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도 잠재적 악화 가능성이 우려되면, 팀과 상의하여 간호사들과 함께 더욱 자주 검토를 한다. 이 와중에 우려대로 악화가 되는 경우 Section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안전을 유지하고, 사건들이 덜 발생할 수 있도록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환자의 인권으로 인해 사람들이 강제 입원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필자 또한 이 일을 시작할 때 환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입원시키는 일이 편하지 않고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때로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환자의 판단력이 떨어지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될 수 있다. 의사로서의 의무 중의 하나가 환자가 최선의 이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경우, 강제 입원을 통해 빠른 치료가 시작되고, 이 흐려진 판단력과 능력이 개선된다면 대부분의 경우 환자들은 고마워한다. 최근 인터뷰에서, "병에 걸린 사람의 인권은 빨리 치료해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권준수 교수님의 견해에 필자 역시 깊이 동의하는 바이다. 어느 나라든 다양한 법 그리고 의료제도가 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 영국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고, 이 또한 종종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 환자와 공공의 안전을 위해 현재 한국의 정신건강복지법이 조금이라도 더 개선될 수 있다면 요즘 한국에서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일들이 덜 발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곽건 -영국 모즐리병원 정신과, MBBS MRCPs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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