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적당한 음주는 사회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푸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적당한’ 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문제들이 따라옵니다. 

‘알코올 사용장애(alcohol use disorder)’란 과도한 음주로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오는 것을 뜻합니다. 알코올 사용장애가 간 기능 손상을 비롯한 여러 내과적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코올 사용장애로 인해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은 의외로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도한 음주는 내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금단 증상’입니다. 술을 장기간 과도하게 마시다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중단하게 되었을 경우 금단 증상이 일어납니다. 과도한 손떨림, 식은땀, 맥박의 증가, 불면, 오심, 구토, 환각 현상 (환청, 환시, 환촉 등), 과도한 불안, 경련 등의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술을 중단한 후 6-8시간이 지나면 손이나 몸이 떨리는 증상이 가장 먼저 나타납니다. 8-12시간이 지나면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무언가 그림자 같은 형태가 보인다.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피부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는 내용의 환각을 흔히 호소합니다. 12-24시간이 지나면 경련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금단증상 중 가장 심각한 유형은 진전섬망(Delirium Tremens)입니다. 대개 술을 중단한 후 72시간 내에 나타나는데 예측불허의 공격적 행동을 하거나 환각에 몰입되어 이상행동을 보이고, 심한 불안, 식은땀, 불면 등의 증상도 동반합니다. 진전섬망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사망률이 20%에 이를 정도여서 정신과적 응급상황으로 간주됩니다.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가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을 경우 모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진전섬망이 나타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이처럼 진전섬망이 나타날 경우 매우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알코올 사용장애의 정도가 심할 경우 입원치료를 권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됩니다.

 

두 번째는 ‘기억상실 장애’입니다. 수년 동안 과도한 음주행위를 했을 때 기억상실 장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급성으로 나타날 때 이를 베르니케 뇌증(Wernicke’s encephalopathy)이라고 하며, 만성화되면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ff’s syndrome)이 됩니다. 이는 음주로 인해 비타민 B1인 티아민(Thiamine)이 부족한 것이 중요 원인입니다.

베르니케 뇌증은 운동실조증, 전정기능이상, 의식혼란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치료를 적절히 받았을 경우 대개 회복되지만 80%에서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진행됩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최근 일에 대한 기억상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작화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화증이란 자신의 공상을 마치 실제 일어난 일처럼 말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이 일단 나타나게 되면 치료를 아무리 적절히 받더라도 완전한 기억력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심각하게 일상생활 기능의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음주 행위로 인해 ‘수면 장애’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깁니다. 사람들이 불면증을 겪을 때 일부러 술을 마셔서 잠이 오게 만드는 경험을 그만큼 많이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술이 수면에 대해 작용하는 양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술을 마셨을 때 잠이 드는 것, 즉 입면은 빨리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4단계 수면시간을 줄이는 작용을 해서 결과적으로 숙면 시간을 줄여버립니다. 게다가 수면을 조각내는 작용을 하여 중간에 잠에서 자주 깨게 만듭니다. 양질의 수면이란 것은 입면이 빨리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자주 깨지 않고 숙면시간이 길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음주 행위 자체가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잠을 빨리 자기 위해 마셔야 하는 음주량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만큼 더 숙면 시간이 짧아지고 깨는 횟수도 더 늘어나게 됩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잠을 빨리 자기 위해서 혼자 밤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가 점점 음주량과 빈도가 늘어나서 알코올 사용장애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벼룩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불태우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주로 인한 장애 가운데 ‘성기능 장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자의 경우 여성호르몬이 감소되고 월경주기가 불규칙해질 수 있으며, 불임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남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감소하고 고환이 위축될 수 있으며 여성호르몬이 증가하여 여성형 유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발기부전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남성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의 경우 배우자에 대한 질투망상 즉 ‘의처증’을 표현합니다. 음주를 한 상태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폭력을 서슴지 않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많은 알코올 환자의 가족들이 알코올 사용장애를 혐오하게 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환자들이 이런 질투망상을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발기부전으로 인한 자존감 저하도 영향을 미칩니다.

 

마지막으로 ‘불안 장애’와 ‘기분 장애’가 있습니다. 기존에 불안장애나 기분장애가 없던 사람이 음주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을 경우 우울증, 양극성정동장애 (조울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때 불안 장애나 기분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알코올 사용장애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불안이나 우울한 기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음주를 더 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음주를 한 다음날이면 불안과 우울한 기분이 더 심해지고 또 그날 저녁에 이런 불안, 우울을 없애려고 음주를 다시 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알코올 사용장애와 연관된 여러 정신의학적 문제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금연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담뱃갑에 매우 심각한 흡연 관련 질환에 대한 그림이나 사진을 명기하듯이, 금주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부족하시다면 앞서 말씀드린 이런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 참고문헌 : Kaplan &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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