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드러나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주목하라.

그룹 N.EX.T의 신해철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노래를 통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라고 고뇌에 찬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인생의 끝나는 시점에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삶의 문제에 압도되면,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는지 삶을 다스리는 질문을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살아갈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진료실에서 어느 환자분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경주의 대지진을 겪고 난 뒤, 자녀들과 덜 싸우게 되었다고 말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죽음을 인식할 때, 주어진 현실에서 사사로운 일들을 분별하며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사랑만 하기에도, 좋은 것만을 경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매번 그 사실을 잊은 채로,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펑펑 나오는 물처럼 자신의 시간도 그렇게 풍족하게 보장된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일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단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과 바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내 시간을 소중한 가치를 위해 잘 쓰고 있는가?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실천한다면, 자신의 삶이 좀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에 압도되어 남은 인생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지만,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예견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숙고해낼 때, 힘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돌파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을 예견하는 지혜를 언급했다. “제 경험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온갖 자존심, 당황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됩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발가벗겨졌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췌장암을 진단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발가벗겨진 심정으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만 남게 됨을 알았고,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가치를 위해 전념할 때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평생 호스피스 환자를 돌봤던 어느 의사는 ‘일주일이 남았다면’ 책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7가지로 죽을 만큼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것과 더 일찍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고 정작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던 것, 마음을 열고 포용하지 못했던 것,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보지 못했던 것, 아등바등하느라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지 못한 것과 마지막으로 있는 그대로 삶에 감사하며 살지 못했던 것을 추려내었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모습은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살게 만드는 현대인들의 삶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낸다. 왜 인간은 죽음의 문턱에서야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는 우매한 모습을 반복하는가? 지인의 장례식에 들려서 한 번쯤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곤 하지만, 그때일 뿐, 자신의 죽음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삶의 태도를 정해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평상시 죽음을 예감하며 현재의 삶의 태도를 조율하며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자 결심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죽음을 예견하는 것은 우주의 시선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통찰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느끼며,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믿기에, 필자가 고안해낸 다소 엉뚱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난 뒤 잠시 거울 앞에 서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덮어놓는다. 이때 나는 잠시 죽었다고 생각하며 10초에서 20초 동안 눈을 감는다. 일단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오늘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본질적 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처음 해보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잡념이 사라지거나 어떤 연상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참 후에 눈을 떠볼 수도 있다. 눈을 뜨기 전에, 만약 조물주의 특별한 은총으로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생명을 연장받는다면. 나는 어디에다 나의 삶의 열정을 불태울 것인가?

떠오르는 내 감정과 생각을 따라가 본다. 하루가 다시 주어진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조물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자신의 좌우명이나 소중한 가치를 숙고하고,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한번 말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의미 있는 목표를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히 ‘오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정도로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볼테르처럼, 행복하게 살겠다는 작은 결심을 새겨도 좋다. 컵에 물을 따라 축배를 들듯 삶이 다시 주어진 것을 축하하며 흥겹게 시작하는 분위기를 내볼 수도 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꺼림칙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죽었다가 다시 삶의 순간을 허락받아 살아나는 연습은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익하다. 그렇게 허락된 나의 하루에서 내게 남아있는 좋은 것을 생각하며, 내게 닥친 문제를 다시 보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길 수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오늘이 지나면 죽음에 하루 더 다가갈 것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뚜렷이 인식하는 사람은 소중한 가치를 중심으로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가는 정신적 태도를 통해서 주어진 오늘을 아끼듯 소중하게 살아낸 사람은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문제를 통해 아름답게 성장하며, 사랑스럽게 삶을 다스리고, 결국 죽는 순간에 덜 후회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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