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예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림_haerin

 

■ 진료실 풍경

화이트 가운에 검정 리본 달린 핑크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병동에 들어섰다. 한 환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아이고, 성형 수술했나. 우째 이래 이쁘노~!” 아하하하. 순간,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오후에는 또 다른 환우들의, “너는 여자 주치의라서 참 좋겠다”로 시작하는 대화 현장을 목격했다. “어. 쬐~금 좋긴 해. 근데 솔직히 얼굴은 쫌 그래.” 아하하하. 순간, 표정 관리가 안 된다. 환우들의 얼굴 지적에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밀려오다 쓸려간다. 정신과 병동에도 이제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이 대세란 말인가. 

루키즘을 떠올리게 했던 환우들의 일화를 시작으로 오늘은 외양의 미(美)에 관해 고찰하고 “상상적 추함 증후군(imagined ugliness syndrome)”으로 알려진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미의 기준, 미의 추구

가급적이면 예쁘(다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은 내적인 추동이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부여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예쁘다. “병식(病識, insight,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으로 정신장애인의 진단과 치료에 중요)이 없네”, “거울 안보나” 할 사람도 있겠지만 뭐, 일단은 그렇다. 문제는 어디가, 얼마나, 언제까지 혹은 어느 정도까지 예쁘기를 원하는가 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막연한 미를 추구하는 세태에 함몰되어 모호한 기준 가운데에도 낙담하고, 미에 관한 본인의 기준조차 불분명한 상태로 획일적인 느낌만을 쫓아 실망하고 좌절한다. 

예쁨의 기준은 바뀌기 마련이며 사회나 문화, 개개인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각양각색이기도 하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속 그 ‘미인’이나 중국의 절세미인으로 평가받는 양귀비는 각각 조선과 당나라를 대표하는 미녀들이었지만 현대 미인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르다. 유럽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앞·뒤트임에 상하 확장한 듯 큰 눈과 폭 좁고 기다란 코를 지닌 비잔틴형의 미인, ‘균형과 조화’의 미가 떠오르면서도 긴 머리와 풍성한 뱃살, 그리고 신비로운 단아함을 지닌 르네상스 미인이라 하더라도 21세기 우리네 미인형과는 차이가 있다. 

미인의 특징을 세기(世紀)별로 축약하기도 부적절한 것이, 마치 절기별 패션 트렌드와 같이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주기로 미의 추구 형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진한 쌍꺼풀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는 그 쌍꺼풀을 약하게 풀든지 아예 “무쌍(無雙)”의 상태로 복귀시키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도 도톰했던 입술은 사라지고 눈 밑 애교살로 부풀어져 있는 경우도 왕왕 본다. 최근에는 오히려 로코코형 미인이 대세다. 얼굴 이곳저곳을 봉긋하게 만들어주는 필러 시술로 과연 유행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돌고 도는 것”이 되었다. 

클로딘느 사게르는 여성의 몸과 미추(美醜) 규정의 방대한 역사를 『못생긴 여자의 역사』라는 흥미진진한 제목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혐오와 인식, 권력관계를 추적하며 아름다움과 추함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일종의 ‘의무’였다. 그래서 추함은 ‘죄악’시 되었고, 용납할 수 없었다. 사실, 잘나고 못난 것은 각자의 가치 판단과 추구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남성에게서도 “꽃미남”과 “훈남”을 기대하거나 “근육질의 남성성”을 열망하는 다양성이 공존하듯, 추구하는 미모나 선택의 취향도 다채롭다. 

 

사진_픽사베이

 

■ 상상 속 결함에 사로잡힌 신체이형장애

용모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신체이형장애는 외모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결함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사소한 결함을 과장되게 지각하여 집착하는 정신과 질환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우울, 불안, 공황, 정신병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하며, 학업·사회·직업적 기능 저하를 나타낸다. 미국 코넬대학교 병원(뉴욕 장로 병원) 정신과 교수인 캐서린 필립스의 연구에 따르면 신체이형장애는 일반 성인 인구의 1%-2.4%, 학생의 2%-13%, 정신과 입원 환자의 13%-16%, 피부과 내원 환자의 9%-14%, 성형외과 환자의 2%-3%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이형장애는 DSM-IV에서 신체형 장애에 속했지만, ‘외모 강박증’이라 할 만큼 그 강박적인 성향으로 인해 DSM-5에서는 강박 장애로 분류되었다. 이들이 호소하는 결함의 부위는 다양한데, 얼굴 이상이 가장 흔하여 머리카락이 63%, 코와 피부가 50%, 눈이 27% 정도로 가장 흔하다. 이들은 입술, 머리, 가슴, 성기, 골격 구조 등 여러 부위의 가상적 단독 혹은 복합적인 이상을 염려·걱정하고 그 대상이 바뀌기도 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반복적인 성형 수술이나 피부 시술에 중독되기도 하나 궁극적인 만족감이 없어 결국, 자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의 유병률이 높다 하지만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근육질 몸매에 집착하는 ‘남성외모집착증’ 혹은 ‘아도니스 콤플렉스’가 근육 이상형태증으로 표출되는데, 이들은 근육강화제나 합성 대사 스테로이드를 과도 복용함으로 부차적인 문제를 겪는다. 

 

■ 신체이형장애, 왜 생기는 것일까

신체이형장애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고, 생물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세로토닌의 비정상적인 기능, 미를 중시하는 문화와 미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사회문화적인 요인, 유소년기의 학대 경험, 성적이거나 정서적인 갈등이 이와 무관한 신체 부위로 전치(displacement) 된 것이라 보기도 한다. 낮은 자존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다양한 심리 요소들과 어우러져 증상을 형성시킨다. 어느 입장에서건 이 환자들은 외모의 상상적 결함이나 사소한 결함을 망상적으로까지 염려하고 집착하여, ‘거울의 덫’에 빠져든다. 이들은 ‘괜찮아 보이기를 희망’하는 ‘가장 큰 소망’을 가지면서도, ‘외모가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었다’라고 하는 ‘가장 깊은 두려움’으로 결국 ‘거울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신체이형장애를 뇌기능의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UCLA 정신과의 제이미 퓨스너 교수는 17명의 일반인과 18명의 오른손잡이인 신체이형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역전 효과를 이용한 상하반전 얼굴로 얼굴 인식과 전체적인 처리 과정을 비교 연구하였다. 여기서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구체적인 특정 부위만 보았고, 뇌의 시각 자극을 처리하는 영역의 비정상적인 작용으로 자신의 얼굴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였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뚜렷한 이상이 감지되지 않으나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없는 이상을 상상하거나 사소한 흉터와 결함을 확대 해석하는 인지왜곡을 보인다.

 

사진_픽사베이

 

■ 신체이형장애 치료, ‘마음의 성형 수술’

캐서린 필립스는 신체이형장애의 대모(代母)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20여 년간 천여 명의 신체이형장애 환자를 진료하였고, 이천여 명과 협력하여 의학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해왔다. 이러한 임상 경험과 연구가 녹아있는 『깨진 거울(The Broken Mirror)』과 『신체이형장애 이해하기(Understanding Body Dysmorphic Disorder: An Essential Guide)』는 환자, 보호자, 가족, 친구, 일반인들 모두에게 이 질환을 이해하기에 좋은 가이드를 제시한다. 

신체이형장애 환자는 흔히 반복적인 거울 보기, 빗질이나 화장, 이발, 면도 같은 손질하기, 자세, 옷, 화장, 손, 머리털, 모자 등으로 결함 부위 가리기, 수시로 다이어트, 타인과 외모 비교하기, 과도한 성형이나 피부 시술 시도, 수시로 옷 바꿔 입기, 피부 뜯기 등의 의례적인 강박 행동을 보인다. 용모에의 관심으로 관리를 시작하지만, 이것이 강박 행동이 됨으로써 삶을 지배하고 결국은 자기 관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사고와 행동에 지배당하는 형국이다. 

이들은 ‘마음의 성형 수술’이 필요하다. 신체이형장애의 약물치료로는 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와 같은 항우울제가 사용되는데, 신체에 대한 왜곡된 인지를 교정시켜주는 인지행동치료나 정신치료와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흔히 우울증, 불안증, 사회불안장애, 다른 형태의 강박증, 물질 관련 장애가 동반되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도 요구된다.

 

■ 대리인에 의한 신체이형장애(BDD by proxy)

자신이 아닌 타인의 외모에 집착하는 ‘대리인에 의한 신체이형장애’도 있다. 가령, 아들의 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딸의 코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해서 수술을 권유하는 부모, 심지어는 딸이 자신과 같이 머리가 벗어지면 어쩌나 집착적인 염려를 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 외모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함과 다양성 추구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러네이 엥겔른은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원서, Beauty Sick)』에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한다. 오늘날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압박”에 정서적으로 몰두하여, 소중한 많은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눈앞에 있는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는 시달림을 겪는다. 이 책은 거울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젊음을 이야기한다.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를 닮은 어느 환우는 어두운 피부톤을 혐오하여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세인들의 시선이 두려웠던 그녀의 유일한 외출은 월 1회, 외래 내원이었다. 신체이형장애 환자는 아니었지만, 랠프 엘리슨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Invisible Man)』의 주인공은 아예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즉, 투명인간)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작품을 시작한다. 백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었던, 흑인으로서 차별받고 고통당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투명인간이 되고자 했던 환우의 고백과 닮아있다. 사회적 낙인과 소외, 그리고 상처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인공처럼 그 환우도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성과 자유함을 누리는 가운데 미의 가치 판단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다시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나름의 최선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고 향기롭게 오늘도 가꾸어보고자 거울을 마주한다. 우리의 겉모습과 속마음을 모두 비출 수 있는 각자의 거울로 매일의 삶이 아름답고 맑고 투명하기를 기대해본다. 러네이 엥겔른의 표현대로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로마 시대 사도 바울의 사상에 따르자면 우리 각 사람은 조물주의 (걸)작품이므로. 

 

* 참고자료

러네이 엥겔른 저(2017), 김문주 역.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울:웅진지식하우스.

클로니딘 사게르 저(2018) 김미진 역. 『못생긴 여자의 역사』 서울:호밀밭.

Ellison, R(1995). Invisible Man. NY: VintageBooks.

Feusner JD, Moller H et al.(2010) “Inverted face processing in body dysmorphic disorder”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44:1088-1094.

Phillips KA(2005). The Broken Mirror: Understanding and Treating Body Dysmorphic Disorder. NY:Oxford UP.

Phillips KA(2009). Understanding Body Dysmorphic Disorder: An Essential Guide. NY:Oxford UP.

 

*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의 권익과 처우를 증진시키며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 보호와 정신 건강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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