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홍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면제를 오래 먹으면 치매에 걸리나?

불면증 환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약 안 먹고 잘 자는 것이다. 특히 그 ‘독한’ 수면제를 그만 먹었으면 한다. 수면제를 계속 먹으면 중독이 되고, 또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다. 수면의학자들은 수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수면제에 정통한 두 학자가 수면제 사용에 대한 찬반 논쟁을 벌인 것이 논문으로 나온 적이 있다. 우선, 수면제 사용을 반대하는 학자는 불면증은 수면제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수면제로 인해 인지기능(認知機能)이 낮아질 수 있고, 노인들이 복용하면 근육이완으로 낙상(落傷)할 위험이 높다고 주장한다.

한편 찬성하는 학자는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수면제 의존이 생겨 용량을 늘려 먹는 일이 거의 없고, 최근에 나온 수면제는 잔류효과(殘溜效果)와 기억력에 대한 영향 그리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효과도 거의 없어서 장기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과 약물 특히 수면제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상은 1950년 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에 대한 것이다. 그 당시 약물은 투약하면 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다음날 낮에까지 몸에 남아 있어 머리가 맑지 않았고, 신체적 심리적 금단 증상이 있어 쉽게 중단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수면제는 단기간 작용하면서 인지기능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수면제를 장기간 사용하면서 ‘약을 먹여 잠을 재우기만 하는’ 치료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단기 불면, 시차 여행으로 인한 불면, 수면-각성 리듬이 떨어진 노인들에게 간헐적으로, 단기간 작용하면서 잔류효과를 남기지 않는 비-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는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수면전문의가 환자의 수면문제를 정확히 진단한 상태에서, 불면증의 인지행동치료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치료의 일부로 수면제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사진_픽셀

 

수면제를 먹으면 몽유병이 생긴다는데, 사실일까?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자다 일어나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자다 일어나서 돌아다니면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몽유병(sleep walking, 수면보행증)이라고 부른다. 몽유병 증상 중에 폭식을 하거나 전화를 걸고, 전자제품을 수리하고 심지어는 자동차를 몰고 나가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행동에 당황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기억하더라도 일부만 기억한다.

대개 몽유병은 사춘기 이전의 소아에서 흔히 보고된다. 대개 나이가 들어 뇌가 성숙되면 저절로 좋아지기 때문에 안전과 관련된 문제만 주의시키고 특별한 약물치료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몽유병은 성인에서 나타나며 경우에 따라 자신이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요한다.

 

그럼,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왜 그런 증상이 생기는가?

몽유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수면제는 그 작용시간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2시간에서 5시간 이내의 짧은 반감기를 가진 수면제는 복용 직후 잠을 오게 하는 작용이 있고 아침에 일어날 무렵에는 혈중 농도가 급격히 낮아져 있어 자고 일어난 후에도 머리가 맑지 않고 졸리는 부작용이 없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작용시간이 짧은 수면제 개발에 주력해 왔다.

그런데 짧은 반감기의 단점 중 하나가 뇌를 불완전하게 잠들게 한다는 것이다. 뇌의 어떤 부분은 수면제의 영향으로 잠들었지만, 다른 부분은 수면제의 혈중 농도가 떨어지면서 깨어나게 된다. 깨어난 뇌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나 움직이게 만든다. 다른 뇌는 여전히 잠들고 있어 자신이 깨어서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면제에 의한 몽유병은 아주 드물게 보고되며, 사람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아 개인차가 있다. 따라서 특정 수면제 복용 후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 수면제는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 담당 의사에게 그 증상에 대해 상담한 후 좀 더 작용시간이 긴 약물을 처방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약물 복용 후 수면보행증이 생긴 경우 몇 가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우선 수면유지를 방해하는 다른 수면질환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흔한 것이 폐쇄성수면무호흡증이다. 잠자는 중 호흡에 지장이 생겨 잠에서 깨는 일이 자주 생긴다. 잠에서 자주 깨다 보면 불완전하게 잠에서 깨게 되고 몽유병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또 주기성사지운동증이 있는 경우에도 잠을 자면서 다리를 차고 그 때문에 잠에서 깨게 된다. 이들 수면질환이 의심되면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추어 치료받아야 한다.

낮 동안 카페인이 들어 있는 각성 음료를 많이 마신 경우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들었다고 하더라도 각성 작용으로 한밤에 깨는 일이 생긴다. 또 잠들기 전에 술을 마신 경우에는 술이 깨면서 잠도 깨게 된다. 카페인, 술 등과 같이 수면유지를 방해하는 음료를 금하는 것도 수면제 복용 후 생기는 몽유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코골이 하지불안증후군 불면증 기면증에 대한 종합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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