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의사에게 애정을 느끼기 쉽다. 계약 관계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임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와 접촉을 자주 하는 전공의 시절은 환자 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이때의 경험은 의사가 성장하면서 만나는 다른 환자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반대로 주치의도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기 쉽다. 마찬가지로 계약 관계로 타인을 돌보는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 자체 때문에, 또 환자가 표현하는 애정 때문에 주치의도 환자에게 쉽게 애정을 느낀다. 사실은 어느 정도의 애정은 치료에 도움이 된다. 조금 더 꼼꼼히 검사를 검토하게 되고, 치료에도 집중하며,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기 쉬운 환경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실제 연인관계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이곤 한다.

 

사진_픽셀

 

하지만 정신과 환자와 정신과 주치의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약물치료와 수술이 치료의 주축을 이루는 다른 과와는 달리, 정신과는 정신치료, 즉 상담치료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이 상담치료의 핵심은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그 자체이다. 치료자가 직접적으로 어떤 행동을 지시하거나 변화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과 어려움에 대해 타인인 치료자가 자신을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환자가 느끼면서, 인간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과거 경험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로 뇌신경회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환자가 주치의를 믿어야만 치료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수술이나 약물치료는 주치의를 믿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효과가 보장된다. 주치의를 믿지 않아도, 암이 완전히 제거되고 항암치료도 한다면 전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환자가 주치의를 믿지 않으면 관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술대에 오르지도 않은 환자를 수술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환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치의를 믿어야만 하기 때문에, 다른 과 진료보다 더 큰 힘의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

 

상담치료에서의 환자와 의사 관계의 특성상, 환자가 주치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제법 일어난다. 사랑이 믿음을 만드는 만큼은 아니지만, 믿음도 사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의사는 고백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랑을 느꼈는지를 탐색한다. 그 과정 속에 환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과 해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료가 마무리될 쯤에는 환자는 주치의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

상담치료의 이런 부작용은 프로이트도 일찍이 경험했었고, 그가 최면치료에서 정신분석으로 치료의 형태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줬다. 치료의 형태가 바뀌면서 정신과 환자와 의사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윤리적 금기들도 함께 만들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금기가 바로 ‘환자와 연애하지 말 것’이다.

상담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환자가 정신과 주치의를 사랑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며,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 사랑은 언젠가 끝이 오기 마련인데 사랑의 종료 시점에 환자가 너무 큰 상처를 받게 되고,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음에도 상담치료 자체를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어져버렸기에 다른 사람에게라도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환자로 진료했던 적이 있는, 즉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환자였던 사람과는 연애하지 않는다. 최소한 현재 자신의 환자인 사람과는 절대 연애를 하지 않으며,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어간다면 보통 함께 근무하는 치료자들이 “환자를 너무 신경 쓰는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하지만 현재 수사 중인 한 정신과 의사의 성폭행 사건처럼 동료 감시 체계의 사각에서 일어나는 일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동료와의 소통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기록은 환자의 동의 없이는 열람 자체가 불가능하고, 환자도 피해를 받는 당시에는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신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더라도 윤리적인 금기와 불법 행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개인의 윤리의식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 윤리의식의 바닥은 교육이 만들며, 적절한 감시 체계가 이를 유지시킨다. 따라서 윤리의식을 개인의 손에만 맡긴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집단 외부의 힘이 이런 체계를 만들 것이 자명하다.

‘아무리 어렵고 불편한 주제일 지라도 때가 되면 다뤄야 한다.’는 정신 치료의 원칙이 전문가들의 실생활에서도 적용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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