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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사랑에 빠진 의사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5.15 09:26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의사에게 애정을 느끼기 쉽다. 계약 관계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임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와 접촉을 자주 하는 전공의 시절은 환자 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이때의 경험은 의사가 성장하면서 만나는 다른 환자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반대로 주치의도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기 쉽다. 마찬가지로 계약 관계로 타인을 돌보는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 자체 때문에, 또 환자가 표현하는 애정 때문에 주치의도 환자에게 쉽게 애정을 느낀다. 사실은 어느 정도의 애정은 치료에 도움이 된다. 조금 더 꼼꼼히 검사를 검토하게 되고, 치료에도 집중하며,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기 쉬운 환경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실제 연인관계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이곤 한다.

 

사진_픽셀

 

하지만 정신과 환자와 정신과 주치의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약물치료와 수술이 치료의 주축을 이루는 다른 과와는 달리, 정신과는 정신치료, 즉 상담치료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이 상담치료의 핵심은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그 자체이다. 치료자가 직접적으로 어떤 행동을 지시하거나 변화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과 어려움에 대해 타인인 치료자가 자신을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환자가 느끼면서, 인간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과거 경험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제로 뇌신경회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환자가 주치의를 믿어야만 치료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수술이나 약물치료는 주치의를 믿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효과가 보장된다. 주치의를 믿지 않아도, 암이 완전히 제거되고 항암치료도 한다면 전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환자가 주치의를 믿지 않으면 관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술대에 오르지도 않은 환자를 수술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환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치의를 믿어야만 하기 때문에, 다른 과 진료보다 더 큰 힘의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

 

상담치료에서의 환자와 의사 관계의 특성상, 환자가 주치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제법 일어난다. 사랑이 믿음을 만드는 만큼은 아니지만, 믿음도 사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의사는 고백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랑을 느꼈는지를 탐색한다. 그 과정 속에 환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과 해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료가 마무리될 쯤에는 환자는 주치의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

상담치료의 이런 부작용은 프로이트도 일찍이 경험했었고, 그가 최면치료에서 정신분석으로 치료의 형태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줬다. 치료의 형태가 바뀌면서 정신과 환자와 의사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윤리적 금기들도 함께 만들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금기가 바로 ‘환자와 연애하지 말 것’이다.

상담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환자가 정신과 주치의를 사랑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며,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 사랑은 언젠가 끝이 오기 마련인데 사랑의 종료 시점에 환자가 너무 큰 상처를 받게 되고,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음에도 상담치료 자체를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어져버렸기에 다른 사람에게라도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환자로 진료했던 적이 있는, 즉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환자였던 사람과는 연애하지 않는다. 최소한 현재 자신의 환자인 사람과는 절대 연애를 하지 않으며,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어간다면 보통 함께 근무하는 치료자들이 “환자를 너무 신경 쓰는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하지만 현재 수사 중인 한 정신과 의사의 성폭행 사건처럼 동료 감시 체계의 사각에서 일어나는 일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동료와의 소통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기록은 환자의 동의 없이는 열람 자체가 불가능하고, 환자도 피해를 받는 당시에는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신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더라도 윤리적인 금기와 불법 행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개인의 윤리의식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 윤리의식의 바닥은 교육이 만들며, 적절한 감시 체계가 이를 유지시킨다. 따라서 윤리의식을 개인의 손에만 맡긴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집단 외부의 힘이 이런 체계를 만들 것이 자명하다.

‘아무리 어렵고 불편한 주제일 지라도 때가 되면 다뤄야 한다.’는 정신 치료의 원칙이 전문가들의 실생활에서도 적용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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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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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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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름정현석다음 2019-05-18 00:22:18

    작성자이름정현석다음비밀번호확인로그인V등록방지글입력   삭제

    • 칼럼제목 2019-05-17 09:14:31

      그리고 금기사항이 ‘환자와 연애하지 말기’같은 아름다워보이는 문장이 아닌 ‘지위와 상황을 이용하여 환자를 성폭행하지 말기’가 된다면 조금 더 경각심을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 문제에 침묵하지 않아주셔서 글 쓰신 전문의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삭제

      • 칼럼제목 2019-05-17 01:02:45

        과거 성폭력을 겪고 현재 치료중인 환자로써 이번 사건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치료를 중단하고 싶을 만큼요.. 이 사이트에 그 사건에 대한 글이 올라왔으면, 일반인들은 모르더라도 정신과 전문의분들은 심각한 범죄로 그일을 바라봤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환자와 사랑에 빠진 의사’라는 제목만 보고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은 감사하지만 그루밍 성폭력에 사랑이란 단어가 너무 끔찍합니다.   삭제

        • 아쉬움 2019-05-16 14:47:56

          이번 의사의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의사 조직 내에서 좀 더 시스템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문의 제명 후에도 버젓이 정신과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이 사건은 윤리와 불법행위 간의 간극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고
          법적으로도 민사상 불법행위를 넘어서 형법상 범죄입니다.
          윤리의식과 범법행위 간의 간극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적하고
          윤리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사례라든지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삭제

          • 지나가다가 2019-05-16 08:57:06

            감시의 사각지대라고 하셨는데 이제부터라도 그 사각지대 제거를 위한 활동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동료의식"이나 "선후배의식"보다 "환자보호와 전문가 의식"으로 지금의 사태를 대하는 모습을 더많이 보여주세요.
            김현철 같은 끔찍한 의사는 두번다시 나오면 안됩니다.   삭제

            • 연대하는사람 2019-05-15 23:10:42

              정신과 의사분들의 의견이 들리지않아 답답했는데, 용기 있게 언급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다만 제목에 "사랑"이라는 표현은 치료자-환자 사이의 경계위반을 미화할 수 있기에 부적절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사건의 그 정신과 의사는 두 명의 환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전이 감정을 통찰하고 관리했어야하는 치료자가 그것을 악용해 환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성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 쓰신 분의 의도는 마지막 두 문단에 있음을 이해하기에 본 글을 게재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삭제

              • 이지혜 2019-05-15 22:26:21

                이런 현재진행형의 상황에서 ‘환자에 사랑에 빠진 의사’라는 제목이 너무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 자체조차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저 제목같은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칼럼의 내용은 정신과 의사의 환자에 대한 윤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요. 부디 제목을 다시 신중히 재고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이 사랑이나 연애로 불려버릴 수 있는 치욕을 부디 예방해주세요.   삭제

                • 이지혜 2019-05-15 22:18:55

                  내부자로서 시의에 맞는 칼럼을 작성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같은 의사분들의 의견이 궁금했었습니다. 어째서 의사와 환자의 (이성적)관계가 금기에 가까운 일인지, 의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현재 그 사건에서 칼럼이 출발했을 것 같은데요, 이번 사건은 사랑도 그 무엇도 아닌 그루밍 성폭력이었습니다. 절대 이런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될 제일 첫번째의 사람이 바로 정신과 의사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버젓이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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