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기판은 210까지 있지만 60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것’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에서 줄리앙은 무겁고도 씁쓸한 한마디를 그렇게 뇌까렸다.

 

사회는 매년 한 살 한 살 원치 않는 나이를 떠먹이며 ‘어른스러워질 것’을 강요한다. 마음보다 몸이 훌쩍 먼저 커버리는 사이에, 미처 준비운동도 못한 어깨에 책임이란 무게를 뜬금없이 지워주며 ‘철 좀 들 것’을 강요한다. 모두들 어른이 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에 어른스러워질 것을 강요하는 저 ‘어른들’을 따라 어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허둥댄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줄도 모르게 다들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란 단어의 묵직한 무게감 밑에, 영문도 모른 채 허둥대온 과거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숨겨두고 살아간다. 그리고 허둥대는 청년들을 향해 좀 더 ‘어른스러워질 것’을 재촉한다.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퇴행’을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개 퇴행(regression)은 오히려 높은 수준의 기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이는 경향이 있는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후기의 발달 기간에 자극 받은 불안 유발 느낌을 회피하기 위해 초기의 기능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퇴행의 근본적인 정신 역동이다. 가장 흔하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거나 부모님을 찾아가는 식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보다 병적인 경우에는 현재의 기능 수준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처럼 퇴행해버리기도 한다. 심각한 퇴행을 겪고 있는 환자의 경우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퇴행은 정신역동적으로 덜 성숙한 형태의 방어기제로 분류된다.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 반응이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분열시키는 형태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퇴행은 스트레스에 대한 자아 강도의 취약함을 반증하며, 스트레스에 대한 건강한 대처 방식의 설립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어떠한 형태의 퇴행은 자아의 성숙과 발달에, 자아의 창의력과 잠재력의 표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통제된 형태의 성숙한 퇴행은 스스로를 탐색할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신분석가 에른스트 크리스(Ernst Kris)는 ‘자아를 위한 퇴행(regression in the service of ego)’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긴장을 풀고 공상이나 백일몽에 빠지거나, 유아기적 욕구, 무의식적인 자아의 욕구 속에서 유영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한다. 에른스트 크리스는 이러한 능력이 예술가들에게는 창의력이나 자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아의 통제 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퇴행. 성숙하고 조절된 형태의 퇴행은 스스로를 본인의 깊은 곳까지 잠수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사회에 적응하고 성숙해가며 어쩔 수 없이 발달 시켜온 각자의 방어기제로 둘러싸인, 나의 무의식 속 작은 어린아이를 잠시 만나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어른이 될 것을 강요받으며 점차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어린 시절 슈퍼맨 같던 그 ‘어른’이라는 존재의 본모습이, 실상은 구멍이 숭숭 뚫리고 일그러진 형태의 면면들이라는 사실을 이미 그 ‘어른’이 되어 버린 채, 뒤를 돌아 볼 때에서야 깨닫고 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살아남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우리는 모두 시속 60km로 컨베이어 벨트 같은 도로 위를 달려가고 있다. 서슬 퍼렇게 눈을 치켜뜨고 감시하는 경찰관의 눈치에, 앞 차들, 옆 차들과의 간격에 다들 멈출 수 없는 일방통행의 도로 위에서 제한 속도 60km로 그저 움직이고, 나아가고 있다.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계기판엔 210km까지 있으나 60km로 달려야만 하는 것. 그 지루함과 무게감에, 멋모르고 바퀴를 내달리는 모습은 성숙하지 못한 자의 ‘퇴행’으로 치부되고 마는 삶이 어른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들 어른의 무게감과 중압감을 견뎌내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 높다란 성벽들을 촘촘히 쌓고 있다.

자아를 위한 퇴행. 그렇지만 이제는 가끔 우리의 마음속 그 촘촘한 성벽을 헤집고 들어가, 삭막한 현실 밖 자아의 피안에서 유영할 여유가 필요할 때가 된 건 아닌지 돌아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210km으로 야수처럼 질주할 수 있는 나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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