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7일 진주에서 참극이 벌어지기 2주일 전, 가족이 안모 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거부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자를 강제입원시키기 위해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병원이 환자 위임장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언론에 공개된 자료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봤다.

 

사진_SBS

 

안모 씨는 2명 이상의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안모 씨의 폭력과 범죄로 가족 모두가 안모 씨와 함께 사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구성원인 가족에게 흔한 일이다.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남이라면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신고는커녕 이웃에게 도움도 청할 수 없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안모 씨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만 지원해 주며 연락을 끊는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가족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안모 씨는 결국 혼자서 살게 됐다. 지지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치료는 곧 중단됐다. 그리고 망상과 환청 등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증상이 악화되자 안모 씨는 거주지 근처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백한 폭력을 저지르지 않아 경찰이 출동을 해도 응급입원은 불가능했다. 또한 본인의 동의 없이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관찰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번 달 초, 안모 씨는 둔기를 들고 도로에서 소란을 피웠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안모 씨의 친형은 늦게나마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 문의를 했다.

정신과 입원의 종류는 총 5가지이다. 이 중 41조 자의입원과 42조 동의입원(자의 입원의 다른 형태)은 불가능했다. 환자가 입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강제입원 세 가지뿐.

50조 응급입원은 명백한 폭력상황이 있어 경찰이 병원까지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44조 시군구청장 입원은 환자의 보호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행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시군구청장 입원 시 발생하는 의료비는 모두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되기 때문이며, 이 예산 자체가 늘 부족해 보호의무자가 없는 환자의 치료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것은 43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다. 43조 강제 입원은 두 명 이상의 보호의무자가 병원을 방문하여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안모 씨는 이미 가족들과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보호의무자가 가능한 것은 안모 씨의 친형뿐이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안모 씨를 강제입원시키기 위해서는 친족이 아닌 보호의무자, 즉 '민법에 따른 후견인'이 필요하다. 이 후견인과 안모 씨의 친형, 두 명이 보호의무자가 되어 안모 씨를 강제입원시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서류가 이 후견인에 대한 '위임장'이다.

하지만 안모 씨가 돈을 들여 재판을 받으면서까지 후견인을 지정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이런 사정을 병원도 알고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길 수 없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가족을 데리고 오시던지, 후견인과 위임장을 가지고 오세요."

 

강남역 사건, 임교수님 사건, 진주 아파트 사건 등 각각의 사건이 서로 다른 중증 정신질환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지른 범죄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뿌리는 같다.

바로 정신건강복지법과 정책이다.

놀이 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는 정신없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저 정해진 선로를 충실히 따라갈 뿐이다. 만약 롤러코스터를 직선으로 달리게 하고 싶다면, 시간과 예산을 들여 선로를 바꿔야 한다. 롤러코스터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고 앞자리에 탄 사람을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앞자리에 누가 탈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 만약 중증 정신질환자의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듣고 싶다면, 아래 동영상 링크를 확인하세요. 

 

► 중증정신질환자 가족이 말하는 강제입원

 

► 정신건강복지법과 정책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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