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불안과 우울, 그 근원을 찾아서 - 1편

[정신의학신문 : 선릉연세채움정신과 김지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가진 자의 불행 1

2017년 3월 27일,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한 호텔 24층 객실에서 50대 남자가 뛰어내려 그 삶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찰스 머피. 찰스 머피는 월가의 소위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로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이름을 날린 백만장자이자 그야말로 성공의 신화였다.

그런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우울증을 가난의 질병 혹은 실패의 질병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실패와 좌절을 한 번이라도 맛본 우리들은 그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울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가지는 것’이다.

많이 가질수록, 성공할수록 행복이 커지기는커녕, 잃을 것이 더 많아지고 실패에 대한 공포와 불안도 덩달아 커진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3구가 인구 10만명 당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인구가 가장 많다.

드라마 주인공이 흔히 내뱉는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는 대사는 이를 잘 표현해 준다. 역설적으로 잃을 것이 많으면 두려움도 커지는 것이다.

왜 인간은 가진 것이 많아도 불행할까?

예로부터 인간은 지금처럼 물질적인 풍요가 보장되지 않는 약육강식의 야생 속에서 살아왔다. 추위, 굶주림,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지고, 그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이른바 ‘상실불안’이 유전자 속에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소유’와 ‘상실’은 동전의 양면이며 한쪽이 커지면 반대쪽도 함께 커진다.

안전한 생존을 위한 환경이 충분히 갖춰진 지금도 이 본능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들보다 새롭게 생겨난 가치들이 더욱 지속적이고 강렬한 본능적 상실불안을 촉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있는데 바로 ‘돈’이다.
 

사진_픽사베이


# 가진 자의 불행 2

얼마 전 설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모인 자리.

할아버지로부터 세뱃돈 1만원을 받은 둘째 아들의 얼굴에 한 없는 기쁨의 웃음꽃이 피었다. 어린 나이부터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인가 싶어 한편 씁쓸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의 환한 표정은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한 살 위의 형이 세뱃돈 2만원을 손에 쥐고 힘찬 환호성을 지르자 둘째의 얼굴은 세상 모든 슬픔을 짊어진 마냥 심하게 일그러지고 울상이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만원의 행복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마음속엔 형보다 만원이나 덜 받은 상대적 박탈감과 고통만이 가득해진 것이다.

본래 상대비교와 박탈감 역시 생존을 위한 인간의 주요한 본능이었다. 주변 부족이 어떤 도구로 농사를 짓고, 어떤 무기로 사냥을 하는지 민감하게 체크하고, 그것보다 더 좋은, 더 날카로운 도구를 만드는 것이 곧 생과 사를 가르는 요소였던 것이다.

생존이란 결국 경쟁자와의 비교우위에 서는 것이고, 내가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존본능은 철저한 비교를 통해 남보다 부족한 것에 대해 체크하고 보완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는 상대적 박탈감의 고통을 뇌 깊숙이 각인시켰다.

못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한 부자들이 사실 나와 다를 바 없는 고통과 불만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작은 위안일까?

결국 끊임없는 비교와 불만, 걱정은 나만의 문제, 또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이다. 비 오면 짚신을 파는 작은아들이 걱정이고 날이 개면 나막신을 파는 첫째 아들이 걱정인 동화 속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표상이다. 조물주는 얄궂게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대신, 가진 자 못 가진 자 할 것 없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하고,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불안해하는 숙제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러한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제각각 다르다. 아무리 본능이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특히 현대사회에 있어 상대비교의 본능은 ‘돈’ 앞에서 한 없이 과장된다. 현재 내가 가진 부의 비교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내일은 저 사람이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미래의 가능성까지 비교하기 시작하며 우리는 무한 걱정의 굴레에 빠진다.

일이 잘 풀려도 걱정.
일이 안 풀려도 걱정.
새로운 일이 생겨도 걱정.
늘 똑같아도 걱정.

안타깝게도 내가 현재를 불행하게 느끼고 있다면, 돈이 많아져도 그 불행은 모습을 달리 할 뿐 나에게서 없어지지 않는다. 요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 본능적 불안코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걱정의 굴레를 벗어나 주어진 본능을 내 삶의 긍정적 원동력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다음 편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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