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윤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만남의 즐거움보다 헤어짐의 고통이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이별과 사별 후에 일상으로의 복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이별과 사별에 대한 개념을 하이닥 최정연 기자의 질문을 토대로 직접 작성해 보았습니다.

 

이별과 사별에서 각각 느끼는 슬픈 감정의 정서적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별 중에서도 사별은 대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 미안함, 그리움 등이 더욱더 오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 때 애도 반응의 정서적 차이는 평소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 왔는지, 대인관계의 만남과 헤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별, 사별에서는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과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별과 사별에서의 애도 방식 및 과정에서 차이가 있나요?

이별과 사별 모두 적절한 애도 기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절하게 비워나가야 다시 채워갈 수 있습니다. 이별은 다시 만나거나 상대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할 수 있지만 사별은 조금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수로 지인을 떠나보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자신을 책망하느라 일상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고에 왜곡이 생긴다면 주변 사람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상대방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애도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애도 기간을 ‘잘’ 보내야 슬픔을 극복하고 이후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애도해야 감정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요?

애도 기간에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슬플 때는 울고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 합니다. 울고 있거나 화가 나서 문을 두드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덮어만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이별의 두려움을 내포하여 새로운 만남에 주저하는 모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와 그랜저 웨스트의 10단계 이론 등 다양한 애도 이론이 있습니다. 애도에 대해 각각 어떤 단계를 거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평소 퀴블러 로스의 5단계를 위주로 애도 과정을 바라봅니다. 애도 반응은 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 등 5단계 모두가 항상 순서대로 나타나기보다 서로가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써 모른 척하거나, 화를 내고 울적한 마음을 보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현상들을 누르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감정 상태를 잘 살피면서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종적으로 수용의 단계로 가야 하는데, 한 가지 단계에 머무르는 애도 반응이 12개월 이상, 소아∙청소년은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단순한 애도 과정을 넘어선 더 심각한 상황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상황에 대한 도피가 아닌 직면이 슬픔 극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너무 힘들다면 그 현실을 외면하고 한동안이라도 피해서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죽음의 5단계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부정(denial)'입니다. 적당한 도피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 중 하나입니다. 그런 ‘부정’의 기간이 길어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힘들어서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무조건 직면하라고 말하는 것은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별 시, 입관 및 장례 등 특정 의식은 이별의 슬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장례식장을 가보면 특히나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때 오열을 많이 합니다. 그 순간 개인적인 슬픔으로 국한되었던 일들이 동시에 단체로 공유되면서 서로가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이 애도 극복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흔히 이별의 아픔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잊힌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완충 작용을 하는 걸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맺으면 옥시토신(oxytocin) 등의 호르몬이 새롭게 방출되어 상대방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 다행감 등이 발생합니다.

사람의 감정적 기억은 뇌의 원시적인 부분인 편도체(amygdala)와 관계가 깊다고 알려집니다. 의식적인 기억은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지만 감정적 기억은 잠재해있다가 특정 단서(cue)에서 다시 피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슬픈 감정 등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픔 극복을 위해 권장할만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생각이 많아지므로 사람을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취미 활동 및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눈물이 나거나 슬프다면 그 슬픔을 피하거나 참지 말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술로 아픔을 달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이 아닙니다. 감정을 마비시키지 말고 대면하다 보면 새살이 돋듯 아픔이 극복될 것입니다.

 

이별과 사별의 아픔,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은 치료가 아닌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거나 슬픔이 너무 크면 치료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애도 반응은 지속적인 비정상적 애도 반응으로 부릅니다.

지속적 애도 반응의 유형은 죽음에 아파하거나 집착을 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함’, ‘상실에 대한 지속적인 부정’, ‘죽음을 편안하게 회상하지 못하는 것’, ‘상실과 관련된 지속적인 분노’, ‘자기 비난 등 죽음과 관련하여 스스로에 대한 부적응적 태도’, ‘상실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과도한 회피’, ‘죽은 자를 따라서 죽고 싶다는 소망’, ‘죽음 이후에 타인을 믿지 못할 때’, ‘죽음 이후에 혼자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분리가 되어 있다고 느낄 때’, ‘죽음과 관련하여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이전과 다르게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동할 때’, ‘상실 이후에 미래를 계획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등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애도 과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상담치료를 하고, 무기력한 증상이 지속되거나 불안감이 심하다면 적절한 항우울제 및 항불안제 투약이 3~6개월가량 필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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