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래퍼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요즘은 한국 래퍼들의 노래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바로 이것이다. ‘I Don't Give A Fuck’. 줄여서 ‘IDGAF'. 이 문구는 투팍의 노래에도 있고 켄드릭라마의 노래에도 있다. 또 지코의 노래에도 있고 도끼의 노래에도 있다. 힙합을 즐겨 듣는 사람에게는 참 친숙한 문구다.

그렇다면 ‘I Don't Give A Fuck’은 어떤 뜻일까. 쉽게 말해 ‘I Don't Care'의 거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I Don't Care'가 “난 신경 쓰지 않아”라면 ‘I Don't Give A Fuck’은 그 ‘신경 쓰지 않는 정도’를 파워업 해주면 된다. 여기에다 알맞은 욕설도 적절히 섞어주면 더 정확한 번역이 될 것이다. “*까, 신경 안 써!” 쯤이 되려나. 글에 욕을 쓰면 어떻게 하냐고? ‘솔까’였는데...

언뜻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다시 보자. ‘I Don't Give A Fuck’. 일단 ‘F-워드’가 눈에 띈다. 이럴 수가, 욕이 들어갔잖아. ‘신경 안 쓴다는’ 태도도 거슬린다. 무례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데 신경 쓰지 않는다니. 도대체 이 문구가 정신건강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진_픽셀


그러나 그렇지 않다. 힙합의 이 태도가 지금껏 많은 사람을 구원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IDGAF'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멋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도 상관없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대신에 ‘IDGAF'은 남의 시선과 기분에 맞추기 위해 정작 자신의 행복을 잃지 말자는 다짐이다.
 

“쟤 버릇없네. 쟤 옷차림이 이상해. 쟤 타투했어. 쟤 머리가 왜 저래? 왜 내가 하자는 대로 넌 안 따라와? 왜 내 말에 토를 달아? 왜 다른 사람들은 안 웃는데 너만 웃는 거야? 왜 넌 늘 무표정인 거야? 왜 넌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안 해?”


이렇듯 ‘IDGAF'은 세상에 너무 많은 참견과 오지랖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세상에는 많은 부당한 간섭과 지적이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와 배려로 둔갑해 있다. 그리고 이런 억압적 환경이 사람들을 진짜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한다. 나답게 살며 타인을 배려하는 삶은 좋은 삶이다. 하지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잃어버린 삶은 병든 삶이다. 힙합은 이런 사람들에게 늘 외쳐왔다. 신경 쓰지 말 것.

생각해보자. 내가 어떤 옷차림을 했다고 해서, 내가 머리 스타일을 바꿨다고 해서, 내가 내 몸에 타투를 새겼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못’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또 남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행복을 걷어찬다. 힙합은 이런 사람들에게 늘 외쳐왔다.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행복해지는 걸 해.
 

다음은 래퍼 산이와 내가 나눈 대화다. 산이는 ‘IDGAF'에 관한 좋은 통찰을 내게 들려주었다.
 

김봉현: 어떤 사이트에서 어떤 글을 읽었는데 산이 씨에 대해 이렇게 말한 부분이 있었어요. 아마 산이 씨의 가사 중에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내 갈 길 갈 거야’ 같은 내용이 있었나 봐요. 그런 부분을 가리켜서 “본인의 잘못을 회피하는 유아기적 모습이다”라고 썼더라고요. 저는 그 부분이 되게 웃겼거든요. 아마 ‘I Don't Give A Fuck’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힙합의 고유한 태도에 대해서 말한 것 같은데, 완전히 오독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산이: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I Don't Give A Fuck’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나를 바라보든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나는 나고 나 자체로 리스펙트 해줘’라고 생각해요.

김봉현: 맞아요. 전 이 태도가 자기를 더 자기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되도록 많이 신경 써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자신을 의심하고 학대하는 데에 사용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감정에 진실하지 못한 채로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힙합은 저한테 ‘너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말해줬어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주면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대가로 정작 나다움을 잃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데, 이 사람들에게 산이 씨는 어떻게 말해주시겠어요?

산이: 배려는 좋은 거죠. 그런데 배려를 넘어서 눈치가 되면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눈치를 너무 많이 봐요. 만약 제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원래 저 사람은 표정이 무표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제가 화가 난 건지, 뭐가 불편한 건지 신경을 쓰죠. 또 어떤 사람은 실제로 행복하지 않은데도 자기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억지로 웃기도 하죠. 이런 문화가 곳곳에 되게 많아요. 그래서 저는 ‘I Don't Give A Fuck’이라는 태도가 너무 좋아요. 이게 ‘나는 너를 무시할 거고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새끼들이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저를 어떻게 보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예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I Don't Give A Fuck.’ 이거죠.

 

나는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주 부당한 꼬리표를 붙이며 깎아내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힙합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힙합이 나에게 알려준 ‘IDGAF'를 이렇게 해석해 내 삶에 반영하기로 했다.
 

"날 좋아해 주면 고맙지만 내가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난 너에게 피해 준 적이 없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뿐이야. 만약 나를 좋아해 준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너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할게. 하지만 그 반대라면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 너에게 맞출 생각은 없어. 난 내가 행복한 걸 할 거고, 이런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

 

* 김봉현

작가, 힙합 저널리스트. 현재 <에스콰이어> <씨네2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CGV와 개최했으며 랩 다큐멘터리 <리스펙트>를 기획하고 개봉했다.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 <블랙아웃>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힙합 에볼루션》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힙합의 시학》 《The Rap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김경주 시인, 래퍼 엠씨메타와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셋이 《일인시위》 단행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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