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스와 페니아

사랑은 오랜 시간 동안 예술, 문학, 철학의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플라톤의 작품 <향연>에서 사랑의 탄생에 대한 한 신화를 아가톤(Agathon)이 전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날 신들은 축제를 벌였다. 그 날 풍요의 신, 포로스(Poros)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 이를 본 가난의 신, 페니아(Penia)가 포로스와 관계를 맺어 아무르(Amour)를 낳았다. 그래서 사랑(Amour=Eros)은 풍요와 빈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동시에 풍요에도 빈곤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랑은 지식과 무지 사이에 있다. 사랑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

사랑은 감정과 이성 사이에 있다. 사랑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 있다. 사랑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사랑은 어느 곳에나 있다. 이런 역설적인 사랑을 과학으로 풀어볼 수 있을까?

(사랑의 시작, 무의식적인 이끌림에 관한 이야기는 앞선 글, ‘여자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가?’,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에서 설명하였다.)

클로이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나고 나서 며칠 동안 그녀의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킹스 크로스 근처에 있는 사무실의 설계도를 완성하는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내 마음은 무책임하게, 그러나 저항할 수 없이 그녀에게로 되돌아가곤 했다. 사랑하는 대상 주위를 맴돌고자 하는 욕구는 완강했다. 그녀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일처럼 계속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 알랭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사랑의 시작 단계에서 뇌 속의 세로토닌은 감소한다. 사랑의 시작 단계에 있는 사람의 세로토닌 양은 강박증 환자의 세로토닌 양과 유사할 정도로 감소되어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강박증적인 증상은 오직 사랑하는 대상, 오직 그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사랑은 오직 그 사람만 보인다. 사랑은 오직 그 사람만 생각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그 사람을 떠 올린다. 사랑은 저항할 수 없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뇌를 뚫고 들어온다. 사랑은 오롯이 둘 사이의 감정이다. 사랑은 강박이고 집착이다. 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또한 사랑은 강박과 집착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갈망이다. 설사 클로이를 소유했더라도 클로이를 원하는 게 사랑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안고 있어도 더욱 조여 주고 싶은, 끊임없이 애무하고 섹스하고 싶은. 사랑은 중독이다. 사랑은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강렬하고 유쾌한 ‘상태’이다. 사랑의 격정은 주체할 수 없는 극도의 희열과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 코카인(마약)을 흡입했을 때의 상태와 유사하다. 사랑을 하면 시상하부에서 뇌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보상, 갈망, 중독, 쾌락과 연관된 뇌 영역을 활성화 시킨다. 이 영역을 보상체계(Reward system : medial insula, anterior cingulate, hippocampus, striatum, nucleus accumbens)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극도의 희열,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은 이 보상체계의 활성화로 인한 것이다. 이런 반응은 더, 더,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지만, 보다보면 손도 잡고 싶고, 그러다보면 키스도 하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무한한 자극을 줄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도파민의 사랑은 당연하게도 결말을 향해 간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랑이다. 우리도 모르는 이끌림에 의해 시작된 강박적인 집착, 그 집착을 넘어선 끊임없는 갈망, 그 갈망을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한계, 어찌할 수 없는 이별.

그렇다면 사랑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인가? 그렇게 떨리고 황홀하고 또한 가슴 아파했던 사랑을 본능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단순한 뇌의 작용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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