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기가 다치지는 않을까/아기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일은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여 아기가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그게 자신의 잘못인양 자책하는 일도 부모된 이의 숙명인 듯합니다.

어쩌면 이 같은 염려와 자책은 아기가 커 성년이 된 이후에도 불쑥불쑥, 혹은 영원히 찾아오는 불청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대생 시절 저는 폐렴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어머니는 당신의 탓이 아닌가 염려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날의 폭음 때문에 생긴 흡인성 폐렴이 분명했는데도 말이죠.)

 

예전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염려가 ‘아기를 향한 부모의 무의식적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생겨난다고 여겼습니다. 사랑의 이면에 미움이 공존한다는 이론적 배경에서 출발한 주장이었지요.

그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다니엘 스턴 같은 비교적 최근의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약간 시각을 바꾸어서 “염려가 큰 만큼이나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도 비례해서 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간주하는 편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부모의 염려로 인해 아기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로션을 직접 눈에 넣어 본 것은 ‘공감’을 일종의 도구로 이용하던 직업적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의 느낌이 어땠는지 좀 더 비슷하게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자기심리학자 하인츠 코헛 Heinz Kohut 은 공감을 일컬어 ‘타인의 내면적 삶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방법’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공감을 조금 사용하게 되면 아기가 늦은 밤까지 잠을 안 자거나, 불가능한 일을 해달라며 떼를 쓰더라도 화가 (약간!) 덜 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물리적인 통증 때문에? 아기를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니면 아기가 이렇게 아팠겠구나 하는 공감으로?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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