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사진 픽사베이

 

어머니는 위대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인내하면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훌륭하게 자식들을 길러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세대를 걸쳐 회자되는 훌륭한 현모양처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며 살아 왔고, 어머니는 의례 그런 것이려니 하며 생각해왔다. 어머니들은 어쩌면 그렇게 훌륭하게 임무를 다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 과정에서 괴로움과 고통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만 해왔던 것일까? 우리는 양육의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감정과 상태보다는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던 결과만을 접하게 되고, 이는 결론적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위대하다, 혹은 위대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심어주게 됨으로써 여성들에게 또 다른 책임감과 부담을 주게 된다.

 

최근 뉴스와 여러 매체를 통해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보가 널리 알려지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는 여성들은 호르몬 등의 생물학적인 변화와 함께 한 생명체의 어머니이자, 책임자가 된다는 심리적인 변화를 함께 경험하면서 혼란을 겪는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산후우울증 환자들은 하나 같이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부족해서’라는 식의 죄책감과 함께 ‘내가 잘못 처리해서 아이에게 해가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 ‘즐거운 일이 없고 눈물만 난다’는 우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무기력감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심한 경우에는 ‘아이와 함께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 실제 이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 같은 산후우울증 자체의 증상 뿐 아니라, 출산을 통해 겪는 역할 갈등, 남편과의 관계 변화, 가족들의 역동 변화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함께 경험하면서 산후우울증 환자들은 더욱 정서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이럴 때 여성들은 생각한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친구들은 다들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데 왜 나만 이럴까. 이러한 생각은 우울한 상태에서 자신감을 더욱 떨어뜨리고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먼저, 출산 후 우울감은 다양한 신체적 정서적 변화라는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약 65-80% 가량에서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을 경험하는데, 이는 적절한 지지를 받으며 시간을 통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호전된다. 하지만 조금 더 심한 정도의 우울증인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은 15-20% 발생하고, 이는 전문적인 치료와 개입이 필요한 상태이다. 치료는 기본적으로 기분 상태를 조절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촉진하는 목적의 항우울제와 불안감을 완화해주는 신경안정제 계열의 약물치료가 주된 것이다. 또한 추가적으로 산후우울증을 악화시키는 다양한 요인들 즉, 가족 요인이나 개인의 심리, 인지적 요인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추가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로 병원까지 가야되나 고민하던 환자들도 약물 치료로 우울, 불안감의 조절에 도움을 받고, 비약물적인 치료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수용이 가능해지면서 전반적인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치료 과정에는 환자 개인뿐만 아니라 남편, 가족들의 역할,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가 중요한 요소이므로 이에 대한 개입 역시 필요하다.

 

왜 나만 제대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 같지?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괴로워하는 어머니들이 있다면, 아니다. 어머니들 모두 생물학적인 변화와 환경적인 변화 안에서 나름의 고통을 인내하며 이 과정을 이겨내고 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삶을 두고 보았을 때, 중요한 성인기 발달 과업이자 과정에 속한다. 어린 아이들만 시기에 따라 발달 과업을 성취하며 자라는 것이 아니다. 성인들 역시 계속 새로운 역할과 업무에 순응하면서 발달하고, 이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인생에서 경험하는 몇 안 되는 큰 변화 앞에 적응해야 하는 어머니들이 과도한 자괴감이나 우울감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도움을 받아 ‘위대한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이해와 치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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