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문인화 수업 체험기 - 1

 

나도 예술을 사랑한다. 물론 특별한 전문적 지식이나 안목이 있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이 즐기는 것만큼이다. 하지만 실제로 손수 하는 예술 작업은 내 평생에 처음이다. 예능과는 타고나길 아예 소질도 인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서문에서 밝혔지만 문인화를 시작한 동기는 참으로 유치한 치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하다 보니까 차츰 문인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특히 지도하는 김양수 화백의 격려와 해석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힘이 났다. 생각나는 대로 그린게 김 화백의 눈에 심상찮게 보인 모양이다.

 

우리는 4군자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게 되질 않았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그려도 비슷하게나마 되질 않았다. 어릴 적 미술 시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억. ‘역시 난 안 돼’하는 자괴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하자고 모두를 꼬드겨놓고 내가 그만둘 수는 없는 일. 할 수 없이 난 내가 그릴 수 있는 걸 그릴 수밖에 없었다. 산이 제일 쉬웠다. 바위, 나무, 고향의 초가삼간, 바다, 조각배, 달. 이들이 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우선 그리기가 쉬웠다. 거기다 문인화니까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짧은 글귀를 써 넣었다. 그림이 시원찮아도 글이 이게 무엇인지 설명을 해준다. 하하. 이게 문인화의 매력이구나. 글과 그림의 상보작용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든 소년 山이 되다 중에서,,,

김 화백은 이를 정확히 지적해냈다. 선생은 늘상 그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 잘 그린 그림은 예쁜 색시가 화장을 한 얼굴이라 오래 보면 지겨울 수도 있지만, 좋은 그림은 늙은 할매 된장찌개처럼 두고두고 구수한 맛이 난다는 것. 내 그림은 잘 그린 건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개성과 심성이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순수한 어린이 마음 같아서 아무런 꾸밈이 없어 정감이 나고 구수한 맛이 난다는 것. 이게 문인화의 진수라는 것이다.

 

내겐 큰 격려요 위로였다. 그만둘까 하는 내 붓길에 불을 붙인 것이다. 내 문인화 수업이 본격화된 것은 그즈음부터다.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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