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Ambulance Chaser"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에서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를 비하하여 지칭하는 말로, 병원 응급실이나 교통사고 현장, 사고 현장 등을 돌아다니며 피해자들을 자극하여 소송을 권유하는 소송 만능주의의 변호사들을 일컫는다. 소송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의료현장에서 역시 환자 의사간의 소송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한 소송들의 냄새를 맡은 ambulance chaser들은 하이에나처럼 병원과 환자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에 대한 비난이 섞인 잘못된 비속어이지만, 생명이 걸린 의료의 현장에서 돈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사-환자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안타까운 시각이 엿보이는 것 또한 씁쓸한 사실이다.

 

의사는 의료 전문인이다. 전문가의 특징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만큼은 비전문인들의 접근이 현저하게 어려운 위치를 독점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의료 영역은 분야 자체의 난해하고 복잡한 특성에 따른 현실적 배타성에 더불어 제도적 배타성이라는 크나큰 벽으로 의료전문가와 일반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국가면허제로 유지되는 의료전문인 제도가 비전문인의 접근을 제도적인 부분에서부터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형태의 다른 여러 전문분야들은 사실 꽤나 많이 존재하지만 의료서비스분야와 다른 영역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가 공공재의 성격을 띤다는 데에 있다. 의식주에 필수적인 공공재로서의 의료 수요라는 특성과, 공급에 대한 품질이나 결과에 있어 접근 할 수 없는 전문분야의 배타성이라는 두 모순된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이 최근 의료 현장의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를 갈래 짓고 있다. 윤리적 당위성이 맺고 있는 환자의사 관계와, 비용 지불로 맺어진 경제적 이해 관계로서의 환자 의사 관계가 서로 갈라지고 있다.

최근 '신해철법'이라는 명칭으로 한창 시끄러운 법률 개정안 또한, 의료윤리의 이런 필연적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신해철 법이라는 이름이 여론 선동을 위한 근거 없는 명칭이라는 비난과 함께 '중환자 기피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의 정식 명칭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5년 전에 이미 제정되었던 의료분쟁조정법에 강제개시조항을 새로 삽입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환자가 사망이나 중증상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환자/보호자의 의료분쟁조정신청으로, 의사의 거부권 없이 분쟁조정을 강제 개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계약에서 그 처치의 내용을 알 수 없는 무력한 위치에 있는 환자를 계약 관계상의 약자로 간주하여 국가의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법안의 맹점이 의료인의 위험부담을 부당하게 높여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분쟁조정 과정에서의 편파적 독소조항 등의 세부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분쟁은 사실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와 윤리사회의 정의 구현 사이의 필연적 대립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재화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의 구조적 불균등으로 인한 거래의 불공정함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끊이지 않는 대립 말이다. 더욱이 그 재화(서비스)가 공공재라는 점에서 의료인은 더 무거운 윤리적 의무를 지게 되고, 간헐적으로 삐걱대는 윤리적 의무 이행의 태만은 더 큰 규제와 개입을 부르게 될 수밖에 없어 온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와 사회 윤리규범 유지를 위한 제도 사이의 다툼은 지난 수백 년의 역사가 보여주었듯, 그 둘을 가르는 대립의 골자에 늘 ‘이념’의 대립이 있어왔다. ‘이념’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데에서 그 맹목성을 드러낸다. 맹목의 이념은 그 특성상 분열할수록 서로를 배척한다. 맹목적인 분열에는 타자에 대한 ‘대상항상성’이 결여된 주체의 미성숙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말러(Mahler)는 자아 형성 시기에 상대방에게 좋은 면모와 나쁜 모습이 함께 공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고, 스스로의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동시에 품어 조절할 수 있게 됨을 통해 대상항상성이 성취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주체는 스스로의 불안을 외부에서 온 것으로 분열(splitting)시키게 된다. 스스로의 두려움을 상대방에 대한 평가절하로 투사하는 것이다. 의사는 의료 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안위와 환자에게 해가 가지 않음을 최우선으로 결정하고 처치해야할 직분에 있음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직분이 의사 개인에게는 직업으로서, 개인의 안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도 역할 한다는 점에서,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의 이차적 이해관계가 형성되는 것 또한 마땅하다. 바로 이 부분이 환자를 향한 의사의 양가감정이, 의사를 향한 환자의 양가감정이 자리 잡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의료 서비스의 질적 유지를 위해서 이러한 상충되는 양가감정에 대한 성숙한 통합이 요구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최근 신해철법-중환자기피법을 통해 드러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시각에서는 서로를 향한 극단적인 분열(splitting)의 색안경만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의료분쟁 조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정답은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갈등이 필연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서로간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법안에서 보이는 날선 독소조항과 강제시행 명령 등에서는 의사 개개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강한 불신이 드러난다. 의사 집단 전체에 대한 맹목적이고 분열적인 평가절하의 의식이 엿보인다. 의사들 또한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망각하며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불신과 의심의 쳇바퀴가 끊임없이 굴러가며 끊임없이 서로를 분열시키고 있다.

 

보건의료라는 사회 근간을 이루는 제도를 물론 의료인들의 윤리 의식에 맡기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윤리 의식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를 옥죄기만 하는 제도 역시, 오히려 아직 빛을 잃지 않은 몇 줌의 윤리 의식과 사명감마저 설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의무과 권리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의 평형점을 찾기가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신뢰이다. 서로 상대방의 이해관계와 상대방의 윤리적 책무감을 각자의 내면에서 통합하여 이룩한, -보다 성숙한 의식의 신뢰로 찾아가는 평형점이 필요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끊임없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고인(故人)이 생전에 바라던 사회 역시 그러할 터이고 말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