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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힙합⑩] 치유의 힙합음악: 분노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김봉현 | 승인 2019.01.12 01:47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선 안 돼. 그건 지금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잖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어차피 내가 어떻게 말하든 당신들은 쓰고 싶은 대로 기사 쓸 거잖아. 그냥 시간낭비일 뿐이야.”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감독 그렉 포포비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와이 레너드(Kawhi Leonard)가 토론토 랩터스 소속으로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홈 경기장을 찾기 하루 전이었다. 좋지 않은 모양새로 샌 안토니오를 떠난 카와이를 두고 쓸데없이 ‘분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미 다 지난 과거의 일일 뿐이니까. 네, 오아시스가 부릅니다. ‘Don't Look Back in Anger'.

 

포포비치의 말은 현명하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포포비치의 말이 진리는 아니다. 다른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카와이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보자. 몇 년 간 카와이를 열렬히 응원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팀을 떠난 그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팬이 있다고 해보자. 마음속 분노를 모른 척하기엔 이미 늦은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기 막 카와이가 코트에 들어서고 있다. 어떡해. 자, 당신은 빨리 카와이를 향해 야유해야 한다. 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관중석에서 소리쳐야 한다. 누구를 위해? 자신을 위해. 자신의 마음 건강을 위해. 

모두가 포포비치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포포비치처럼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크고 작은 분노를 마음속에 담고 산다.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행동도 허용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분노를 참아내고 억누르는 것만이 꼭 정답도 아니다. 물론 마음속에 분노가 일지 않는데 억지로 분노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영화배우가 아니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가슴 안에 불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그 불을 꺼낼 필요가 있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 동시에 적절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말이다.

나에게는 힙합이 그랬다. 힙합음악은 내가 나의 분노를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 동시에 적절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게 늘 도와주었다. 덕분에 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다. 더 이상 화병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힙합음악 속에서 래퍼들이 분노할 때 나는 같이 분노했다. 나를 위해 함께 화내 주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래퍼들이 자기가 분노한 이유를 랩으로 설명할 때 나는 내가 분노한 이유를 떠올렸고, 래퍼들이 자기에게 상처 준 자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항변할 때 나의 자존감 역시 충만해졌으며, 래퍼들이 욕을 뱉을 때 나의 입도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채워졌다. 그러고 나면 내 마음은 다시 건강해졌다. 욕을 한껏 뱉었지만 상처 받은 사람은 없었다.
 

사진_픽사베이


분노가 가득한 힙합음악을 떠올리면 투팍(2Pac)의 'Hit'em Up'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투팍은 이 노래에서 자신의 친구였지만 이제는 적이 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를 향해 분노를 토해낸다. 'Hit'em Up'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신감에 기반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Grab your Glocks when you see 2pac
나(투팍)와 마주치면 총을 준비해

Call the cops when you see 2Pac
내(투팍)가 나타나면 경찰을 불러

강한 박력이 느껴진다. 심지어 나는 이 구절이 문학적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투팍의 'Hit'em Up'에 매혹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노래가 ‘진심’이자 ‘진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란 때때로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동시에 분노는 늘 진짜인 감정이다. 분노에는 늘 진실함이 묻어 있다. 분노로 뒤덮인 노래는 실은 진심으로 가득한 노래다. 타인의 진심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나는 분노가 진짜여서 좋다.

 

한국래퍼 중에서 분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은 스윙스다. 지금이야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스윙스는 데뷔 이래 줄곧 분노를 음악에 담아왔다. 자신이 선구적 행보로 한국힙합에 기여한 공로를 리스너들이 인정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누명을 씌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넌 할 말 없어’는 오랫동안 쌓여온 스윙스의 분노가 정점을 찍고 폭발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바닥에서 아마 가장 억울한 한 사람 바로 나

모든 사연 구차하겐 i won't rhyme
허나 할 말은 따로 있는 거니까
넌 잘 봐 병신들 좀 씹을 거니 난
앨범 낸 게 몇 개냐 내가
너네가 찬양하는 놈들과 비교해봐
가요계에 너도 모르게 끼친 영향
쟤가 하면 간지고 내가 하면 말장난?
한 때 까였던 도치법
난 무슨 저능아 취급받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젠 죄다 하고 있어
결국 난 받았니 최소한의 인정?
Hell fuckin nah, man 난 몰매 맞고 있어
곡에선 죽일 것 같이 돌려서 날 씹어
길에서 만나면 신속한 인사하고 비켜
넌 양심도 없냐? 왜 그래?
뭐 이런 것도 이젠 8년째. everyday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는 결국엔 말야
왕은 애꾸눈이 될 수밖에 like fetty wap
물론 i ain't perfect, 또 다 영웅야, 지 말론
근데 이상하지 않냐, 난 된 것 같아 하후돈

그러나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랩이 끝난 후 등장하는 스윙스의 나레이션이다. 물론 나레이션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많은 분노가 서려 있지만 말이다. 그 일부분을 순화한 버전으로 실어본다.

(중략)
나 서교동 살거든
나 맨날 거기 지나가
왜 아무도 나한테 와서 지랄 안 하는 거야
너네 인터넷에서 쓰는 것처럼 나한테 얼굴 보고 지랄하는 새끼 왜 한 명도 없는 거야
나 맨날 혼자 다녀
빨리 와서 나한테 지랄해봐
(중략)

누군가는 이 노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욕이 많이 나온다거나, 태도가 불량하다거나, 아무튼 무언가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정반대다. 이 노래는 가장 진실한 노래인 동시에 가장 건강한 노래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분노를 발산해 자신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현실 속에서 그렇게 행하기 어렵다면 힙합음악으로 대리 만족하며 마음의 불을 꺼뜨려도 되니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 노래는 랩을 한 스윙스와 랩을 들은 나를 동시에 치유해주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방탄소년단도 분노를 터뜨린 적 있다. 커리어 초기의 방탄소년단은 자칭 힙합 리스너들의 단골 안줏거리였다. 그들은 방탄소년단을 연신 비웃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아이돌 주제에 힙합인 척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분노를 여러 노래에 걸쳐 세상에 꺼내놓아야 했다. 다음은 ‘BTS Cypher PT.3 : KILLER’의 일부분이다.

키보드로 힙합 하는 놈들보다 백 배는 열심히 살지
랩 만만한 genre, too many generals
어중이떠중이들아 다 갖춰라 매너를
무슨 벌스 하나도 제대로 못 끌어가는 놈들이 랩이나 음악을 논하려 하니들
그래서 여기는 지금도 똑같이 전부 다 이렇게 랩을 하지
세 글자 아니면 두 글자씩밖에 못 말해 다 중환자지
Mother father 실어증 환자들, 전부 사짜들
Back yourself and look at the mirror
가져올라면 독창적으로 좀 해봐 뭐 suckas 성의들이 zero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헤이터’를 떠올린다. 방탄소년단이 그들의 헤이터를 응징(?)하는 동안 나 역시 내 삶의 방해자들에게 분노를 토해낸다. 물론 이제 방탄소년단은 분노를 터뜨릴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됐다. 한국힙합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고 존중하지만 가끔 이 시절의 랩몬스터와 슈가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한국 남자 아이돌 그룹의 가장 ‘수위 높았던’ 순간, 또 가장 ‘힙합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빡칠 때 듣는 힙합음악’
(Hip Hop songs you listen to when you're pissed off)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게 만드는 힙합음악 25곡’
(25 Rap Songs That Make Us Want To Punch Someone In the Face)

분노와 힙합을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면 나오는 제목들이다. 이것은 곧 힙합음악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분노를 관리해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무엇보다 힙합음악이 ‘삶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 김봉현

작가, 힙합 저널리스트. 현재 <에스콰이어> <씨네2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CGV와 개최했으며 랩 다큐멘터리 <리스펙트>를 기획하고 개봉했다.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 <블랙아웃>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힙합 에볼루션》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힙합의 시학》 《The Rap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김경주 시인, 래퍼 엠씨메타와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셋이 《일인시위》 단행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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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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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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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요 2019-01-12 18:17:02

    기사들을 흥미롭게 잘 보고 있었습니다만 분노를 날것으로 드러내는게 어떻게 건강한 방식의 표출일 수가 있을까요. 이번 기사는 너무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기 맙딥 치노엑스엘 배드보이 레코드 죽 열거하고서 아무렇게나 f word 붙이는 가사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멋있어 보였습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투팍의 죽음도 이러한 표현방식이 불러일으킨게 아닌가 싶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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