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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편견
오중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1.07 09:04

[정신의학신문 : 오중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2위이다. 리투아니아라는 나라가 OECD에 신규 가입함으로써 2위로 내려간 것이라서, 사실 상 1위나 다름없는 2위이다.

자살률이 우리나라에 왜 높을까? 원인으로 제시되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 자살자 유가족에 대한 편견, 언론의 자살보도 행태의 문제, 경쟁적인 사회 구조의 문제,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 등이 있다.

자살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서, 어느 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 원인이 다른 원인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본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편견’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2위인 것이 높은 편견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_픽사베이


먼저 다루고 싶은 것은,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 매우 높은 나라다. 물론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편견이 덜하다. 10년 전은 20년 전보다 덜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편견이 매우 높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 높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져도 정신과에 가거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도 심하지만,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오해도 심하다.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너는 왜 이리 마음이 약하냐?” “마음을 잘 고쳐먹으면 되는 것이니 별일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아직 국내에는 많다.

예를 들어 선진국 국민의 경우 우울하거나 뭔가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다 싶으면 쉽게 정신과에 가서 도움을 받고 이후 잘 살아가게 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렸어도 편견 때문에 정신과를 찾지 못하고 자살의 위험 속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건대 폐렴에 걸렸어도 내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내과에 가지 못하고 혼자 죽음의 투병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살 사고는 그 자체로 심각하게 정신과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살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경우는 자살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경우로 정신의학적 응급 상태다.) 메르스(MERS)에 걸렸다면 심각하게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메르스보다 사망률이 약간 낮은 우울증(15%의 사망률)은 의학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의료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자살자들은 우울증을 겪는다. 

경제적인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인 문제 등 자살의 촉발 원인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도 ‘사회적 문제 → 우울증 → 자살’이라는 순서로 인과 관계가 진행된다. 따라서 “자살의 이유가 사회적 이유이냐 아니면 의학적인 이유이냐?”라는 질문은 다소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는데, 사회적 이유가 의학적인 이유의 촉발 원인이 되고, 의학적 이유(우울증 등)는 매개적인 요인으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컨대 공기의 질이 나빠져 폐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높아졌을 때, “사망률이 높아진 이유가 공기의 질이 나쁜 것 때문이냐 아니면 폐질환 때문이냐?”라는 질문이 어리석은 질문인 것과 같다.)

연구에 의하면 3번 이상 우울증 삽화가 반복된 이후에는 분명한 촉발 원인이 없어도 우울증 삽화가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만큼 우울증도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사회를 개선해서 촉발 요인을 개선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동시에,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제거해서 자살에 이르는 관문인 우울증 등 의료적 상황을 잘 치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편견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언론인이나 예술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상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서, 어떤 범죄 사실이 있을 때 마치 범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라 범죄를 저지른 것인 양 기사를 쓰는 것은 편견을 조장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마치 잠재적인 범죄자인 양 인식되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범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범죄율보다 높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예술인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정신과 치료 장면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수년 전, 나는 영화에서 정신과를 호러의 재료로 쓰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영화는 너무 끔찍했다. 정신과 병동을 어두운 배경에 무서운 느낌을 주는 영화적 장치를 써서, 정신과 병동을 너무 끔찍한 곳으로 그려 놓았다. 그리고 정신과 병동에서 의사가 정기적으로 환자를 강간하고 있었고, 장기도 팔고 있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고, 이 영화를 봤다면 나는 결코 정신과에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들고 죽고 싶을 지경이라도 말이다.

이 영화가 훌륭한 호러 영화였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호러 영화의 재료로 정신과 병동을 사용함으로 해서 그렇지 않아도 심한 국내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더 심하게 할 수 있다는 책임성을, 영화 제작자가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단, 정신과 치료의 장면을 사실에 가깝게 사용하여, 편견을 없애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은 찬성이다. 기왕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자문을 받아서 사용하면 좋겠다. 몇 해 전 KBS에서 방영한 ‘세상 끝의 집’은 국립공주병원을 배경으로, 사실적으로 환자와 가족, 치료 장면을 보여주면서 편견을 없애는데 기여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과거 노르웨이 총리는 우울증으로 1개월간 병가를 받았다고 한다. 야당의 공격이 있었지만, 오히려 총리의 지지율은 올라갔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특히 정신과 치료받기를 꺼려해서 공적기관이 자살위험의 사각지대라는 얘기가 있는 우리나라가 노르웨이처럼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일가?

사진_픽사베이


다음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자살이 성공하기까지 약 20번 정도의 자살 시도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은 그만큼 다시 자살 시도를 할 확률이 높다.

자살 시도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계속 살아남아 있을지, 아니면 세상을 떠날지를 계속 고민한다. 마치 계속 살아남을 이유와 세상을 떠나야 할 이유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서, 기우는 쪽으로 결정을 한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살아남을 이유가 많게 기울면 살아남기로 하고, 어느 날 살아남을 이유보다 세상을 떠날 이유가 많게 기울면 세상을 떠날 시도, 즉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시도에 실패하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살아남았을 때, 이 사람은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떠날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데, 이때 세상을 떠나는 쪽으로 다시 기울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이다.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태도가 이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빼앗는다. 즉, 편견이 자살 시도의 반복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을 벗는 것은 중요하다.

 

사살 시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우리 사회가 잘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응급실 기반 자살예방사업(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방문하는 사람을 사후 관리하고 정신과 치료로 연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나쁜 사람도 아니고 우리와 다른 사람도 아니다. 그냥 힘겨워하는 한 인간으로서 주위의 위로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을 죽음의 자연스러운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는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살시도자나 자살을 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후술하겠지만 자살자의 유가족은 그 누구보다 사회의 돌봄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임에도 자살한 사람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어디서 말을 할 수도 없고 위축되어 있게 된다.

자살을 자연스러운 죽음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맞다. 단, 우리나라처럼 너무 자살률이 높은 것이 문제이다. 마치 암이 죽음의 자연스러운 한 형태이지만 암 사망률이 너무 높으면 그것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암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 금연 운동도 하고 검진 사업도 하는 것처럼, 자살예방사업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자살자 유가족에 대한 편견이다.

자살자의 유가족은 일반인들보다 자살을 할 확률이 훨씬 높다. 연구에 따라서 4배~10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자살예방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유가족은 반드시 잘 돌보아 주어야 하는 자살 고위험군이다.

그만큼 가족을 자살로 잃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다. 때때로 정신적인 외상이다. 특히 자식을 잃은 경우, 그 사무치는 아픔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유가족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 분노, 슬픔, 후회, 죄책감, 그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얽혀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하는 섣부른 위로나 충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아픔도 견디기 힘든 고통일 텐데, 사회마저 편견 어린 시선으로 유가족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자살자에 대한 편견이 심한 나라라서 유가족들의 마음이 더욱 아프다. 유가족이 편견 때문에 자신의 힘듦을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및 상당수의 광역 및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유가족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유가족의 고통은 유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조 모임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주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의 가족을 알고 있다면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로 안내해 주기 바란다. 혹은 보건소에 연락을 하면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민간 정신과의사들이 유가족 자조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니, 정신과의사 선생님들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편견을 벗겨주어서 치료를 받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해주기 바란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는 걸 꺼려하면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방문하게 해주어도 좋다.

편견을 벗기는 것은 언론의 역할도 크지만 우리 국민 한 명 한 명의 역할도 크다. 편견 없는, 그리고 자비로운,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쉽게 표현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중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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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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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비 2019-01-08 00:03:14

    정말 팩트 말하신듯 하네요.
    자살시도하면 보통 대학병원 보내고 입원하죠. 어디 한번만 입원하나요? 입원비만해도 몇 백 깨져요. 정신과는 실비보험 청구도 안되죠.
    여태 누적된 외래비용, 심리상담 및 교통비 등등 다 합치면 작년에만 천단위로 썼을겁니다. 이 돈으로 신나게 놀았으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네요.
    자살시도자에게 정신과 치료는 이런겁니다. 엄청난 비용이요. 이렇게 돌아보니 괜히 병원다닌거 아닌가해요. 치료시도는 괜한 발악 정도? 왜냐면 아직도 전 죽고 싶거든요.
    20회 자살시도하면 된다니 전 몇 번만 더 하면 되겠네요...   삭제

    • - 2019-01-07 22:23:07

      틀렸어요. 편견 때문이 아니에요. 정신과 의료비용이 너무 비싼 게 못 가게 하는 원인입니다. 의사분들은 고작 이 돈이 가지고?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 우울증 앓는 분들은 월급 150-200 이 정도밖에 못 벌어서 생활비 쓰기에 바빠요. 300 버는 저도 정신과진료 부담스럽습니다. 한 번 갈 때 최소 20 깨지니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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