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질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3편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링크) 우리는 정신질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1편)

(링크) 정신과 의료진은 넥타이를 하지 않습니다. (2편)

 

임 교수님이 우리를 떠나며 남긴 메시지는 두 개입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 달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이에 국회는 제2의 임 교수님 사태를 막겠다며 의료법,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개정안 내용 중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관련된 내용은 정신건강 전문의가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본인 동의 없이 퇴원 사실을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달하는 것, 외래치료명령을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내릴 수 있게 하며 이 명령에 의한 치료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게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의료진 폭행과 관련된 내용은 매년 진료환경안전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며, 의료행위를 하는 장소에 비상벨, 비상문, 비상공간을 설치하는 예산을 지원하고, 처벌의 수위도 높이는 것들입니다.

만약 이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들이 1년 전에 시행되었다면, 임 교수님은 우리와 함께 2019년을 맞이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임 교수님이 우리를 떠나게 되는 과정이 달려졌을 뿐, 결과는 동일할 겁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법이 2018년 12월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이렇게 사건이 진행됐을 겁니다.

 

“박모씨는 치료를 마치고 폐쇄병동에서 퇴원을 하게 됐다. 퇴원 시점에는 조증 증상도, 망상도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던 적이 있어, 주치의인 임 교수님은 박모씨 동의 없이 퇴원 사실을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달했다. 이 정보를 받은 해당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사례 관리를 맡겼다. 

박모씨는 그 사회복지사의 72번째 관리 대상이 됐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고, 가정 방문을 시도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13번째 환자가 직장을 잃었고, 35번째 환자가 증상이 악화됐고, 59번째 환자는 자살시도를 했다. 두 달 만에 만난 박모씨는 병원을 가지 않는 것으로 추측됐고, 이를 센터장에게 보고하여 외래치료명령을 내렸다. 

2주 뒤 센터로 민원이 들어왔다. 박모씨였다. 자신은 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외래치료명령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박모씨는 병원을 매주 가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 간 적은 있었다. 다만 처방받은 약을 몰래 먹지 않을 뿐이었다. 이를 알 턱이 없는 보건복지부는 센터장과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징계를 내렸다. 명백한 증거 없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치료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계약직이던 사회복지사는 이 징계로 인해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신규 사회복지사에게 79명의 관리 대상을 인계해 주고, 그는 떠났다. 신규 사회복지사는 처음 보는 사람 79명을 급하게 외우고, 관리하고, 상담해야 했고, 이 탓에 한동안 박모씨는 잊혀졌다.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6개월이 지났다. 박모씨는 조증 증상이 악화되어 보호자를 폭행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보호자는 사설 구급대를 불러 박모씨를 근처 병원에 보호의무자 동의 입원을 시켰다. 급하게 병원에 왔기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챙겨오지 못해서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다. 정신과 의사는 미비 서류는 일주일 내로 보완하면 된다고 보건복지부가 밝혔었기 때문에, 일주일 안에 서류를 가져오면 된다고 대답했다. 보호자는 내일 서류를 가져오기로 하고 입원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입원 5일 만에 사달이 났다. 불법 강제입원 조사를 하던 한 검사가 그 지역 병원의 강제 입원 사례를 조사하던 중, 박모씨의 주치의가 필수 서류 없이 강제입원을 시킨 것을 알게 됐다. 검사는 입원 당일, 필수 서류인 가족관계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그 강제입원은 불법이라 판단했고, 주치의를 기소했다. 주치의는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근거로 강제입원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유권해석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검사는 말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담당 의사는 환자를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보복이 두려운 보호자는 환자를 바로 옆 병원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필요한 서류를 미리 챙겨 보호의무자 동의 입원을 시켰다. 이전 병원 의사에게는 미안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옮긴 병원에서는 1주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정신건강복지법에는 강제 입원을 한 환자는 모두 입원적합성 심사를 받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전 병원에서 5일, 옮긴 병원에서는 7일 동안 약을 먹었기 때문에 증상이 완화되어 있었고, 간호사 및 국립병원 행정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환자를 볼 당시에는, 환자의 상태가 강제입원을 할 정도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심사위원은 입원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했고, 외래치료를 잘 받으라며 환자를 퇴원시켰다. 

이렇게 환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맞은 보호자는 이제 박모씨가 두렵고, 정신의료체계를 믿을 수 없었다. 그저 환자가 집 밖에서는 사고를 치지 않게 말리고, 사고를 치면 빌어서 변상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다.

 

2018년 12월 31일, 그날따라 박모씨는 화가 나 있었다.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에 폭탄을 심어놨기 때문이다. 조증이 심해져서 결국 망상이 생긴 것이다. 약만 먹는다면 사라질 망상이지만, 박모씨는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자신의 머리에 폭탄을 심은 사람이, 이 약을 독약으로 바꿔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모씨는 보호자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때렸다. 보호자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친척집으로 도망갔다. 출동한 경찰은 진정하고 이전에 받아놓은 약을 먹으라고 했고, 박모씨는 경찰도 폭탄을 심은 범인과 한패라며 경찰을 찔렀다. 경찰은 출혈 과다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박모씨는 집을 뛰쳐나가 일 년 전 입원했던 병원에 바로 찾아갔다. 이전 주치의인 임 교수는 자신의 머릿속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입원을 권했고, 박모씨는 화가 났다. 폭탄을 심은 범인과 한패이기 때문에, 자신을 가두고 해치려 한다고 확신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문을 잠그며 경찰을 찌른 칼을 품에서 꺼냈다. 임 교수는 비상벨을 누르고 의자 뒤에 있는 문으로 옆 진료실을 통해 복도로 빠져나갔다. 다행히 외래 간호사는 간호사실 안에 있는 대피소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 교수님은 복도에서 박모씨와 마주쳤고,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몇 주 뒤 진행된 재판에서 박모씨는 몹시 높은 형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진료환경안전에 관해 병원을 조사했고, 병원이 국가지원금을 받고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상문을 병원 밖으로 내지 않고 옆방으로 뚫었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은 병원을 비난했고, 간호사도 피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를 주치의가 피하지 못했다며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국회는 진료환경안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사회에서 최소 10년 이상 격리시키고, 해당 병원장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또 외래치료명령을 받지 않은 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담당 정신건강복지센터장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권선징악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사진_픽사베이


아마 이런 얘기들이 한 편의 소설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하지만 환자 동의 없이 정보를 전달한 것, 그리고 외래치료명령을 센터장이 내릴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화이며, 현재 진행 중인 사건도 있습니다. 위 이야기는 그런 실화들을 합치고, 재구성한 것입니다. 

현재 논의 중인 개정법이 실행되면, 진료실은 안전해지겠죠. 진료실에 있는 의사도 조금은 안전할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아픈 마음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것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범죄자라는 편견이 생길 것이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본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더 숨기겠죠. 몰래 치료를 얼마나 오래, 잘 받을 수 있을까요. 결국 치료는 중단될 겁니다. 결국 시민들이 조금 더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되겠죠. 또 시민들에게는 보호받을 수 있는 진료실도 없으니, 의사보다 위험이 더 하겠죠. 하지만 의사도 진료실 밖에 있을 때는, 마찬가지로 더 위험할 겁니다.

 

임 교수님의 유족들은 진료실 안에 있는 의사‘만’을 안전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임 교수님 역시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늘 함께 살아보자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주위의 많은 분들이,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네, 막을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이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의료체계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꽤 길고 복잡하죠. 그래서 지금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겁니다. 시민들이 이해를 해야 공론화가 되고, 정책과 법을 만드는 분들이 이해를 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니까요.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중증 정신질환자 정신의료체계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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