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질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편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링크) 우리는 정신질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1편)

 

사실,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환자에게 상해를 입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2012년에는 부산에서 환자에게 입원을 권하던 정신과 전문의가 흉기로 수차례 찔렸으며, 2013년 대구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자신의 주치의를 흉기로 찌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지금처럼 화제가 아니었으며, ‘정신과’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일은 각각의 의사의 불행으로 치부되었습니다. 만약 이때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임 교수님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말하는 ‘정신과’라는 특수성은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가장 먼저 만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정신과 의료진은 증상으로 인한 환자의 폭력성에 가장 먼저 노출되기 때문이죠.

많은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조증 환자분들은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그분들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되죠. 눈앞에 있는 주치의가 짓는 미소가, 자신을 비웃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가운 주머니의 볼펜이 감시 카메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종종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자신을 감금하라는 신호로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환자들은 주치의와 의료진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사실, 정신과 의료진 모두는 환자에 의한 폭력 경험이 있습니다. 이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조용히 있을 뿐이죠. 대부분 폭력 경험이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몇 대 맞은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신고하지도 않죠.

 

낮에 일어나는, 입원 환자에 의한 폭력은 그리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곁에 다른 의료진들이 도와주고, 피해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죠. 하지만 밤에 일어나는 입원 환자에 의한 폭력은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신과 의료진은 넥타이를 하지 않습니다. 넥타이로 목이 졸리면 도망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직 근무를 시작하는 신입 전공의 때도 교육을 받습니다. 정면에서 목이 졸릴 때, 옆에서 목이 졸릴 때, 뒤에서 목이 졸릴 때, 혼자서 도망치는 방법을 배웁니다. 흉기를 가지고 입원할 수 없기 때문에, 목이 졸리는 상황만 피하면 도와줄 사람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하지만 입원 환자에 의한 폭력보다, 외래 환자에 의한 폭력은 더 심각합니다. 먼저 환자가 무기를 가지고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도검류가 가장 흔하고, 시골은 총포류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에 종종 환자가 총포류를 소지하고 방문하기도 합니다. 외래 직원들은 병동 직원보다 폭력 상황이 익숙하지 않고, 또 대처할 수 있는 수단도 없습니다. 안전 요원이 외래에 상주하는 경우는 더 없죠.

 

폭력 상황에 대한 법적 효력이 있는 가이드라인도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제지할 수 있는지 모를뿐더러, 경우에 따라 의료진이 가해자로 몰리기도 합니다.

야간 당직 때, 한 환자가 저를 깨물려 덤벼들었고, 급하게 옷으로 환자 입을 막았습니다. 환자는 인권위에 이를 신고했고, 인권위는 제가 의료용 입마개가 아닌 옷으로 입을 막았기 때문에 인권 침해이고, 제 과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몇 시간의 인권 교육을 권고했습니다.

인권위 의견대로라면, 저는 환자가 저에게 달려드는 순간, 시중에 없는 의료용 입마개를 개발하고, 식약처에 의료기구 허가를 받은 후에, 환자의 입에 착용시켜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신과 의료진은 피해자가 되거나 심지어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로 관계가 정해진 시점에서, 환자는 약자이며, 의사는 환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기도 하죠. 이런 문제 때문에 정신과 교과서에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몇 가지 사항을 권고합니다.

공격적인 환자를 면담할 때, 정신과 의료진은 문을 등져야 합니다. 환자의 등 뒤에 문이 있다면, 환자가 공격하는 경우에 도망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와 의사 사이에 책상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달려들 경우 책상이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상 아래에 비상벨을 설치하거나, 안전요원을 대기시키는 것 역시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선택 사항입니다.

따라서 공격적인 정신과 환자를 면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지원을 꺼립니다. 술기나 처치가 없고, 입원 기간이 길어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미 많은 종합병원이 정신과 폐쇄 병동을 없앴으며, 외래 진료도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병원 측에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번거로운 요청을 하면, 정신과 진료실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고, 자신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들도 새 병원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하죠.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정말 완벽한 법이 만들어진다면 지금보다는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8년 일어난 수많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 중 한 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병원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병원 밖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링크) 강북삼성병원 임교수님 사건의 재구성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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