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태어난 지 1달이 지난 후 수개월 동안 아기는 굉장한 도약의 시기를 지납니다. 이때부터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방긋 웃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사회적 미소’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아마도 아기는 특별히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게끔 타고난 듯 보입니다. (대강 종이에 그린 얼굴 그림에도 아기는 미소를 짓는답니다.)

이 능력은 부모로 하여금 아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생애 처음으로 맺은 인간관계는 점차로 더 특별해지고 깊어져 갑니다.

 

이 시기 아기는 몸을 통해 우연히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것을 반복하려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손을 관찰하고서는 입으로 가져가 보려 합니다. 처음에는 서툰 몸짓으로 인해 손을 입에 제대로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나면 드디어 아기는 조직화된 동작을 만들어내고 손가락을 빨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섭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 Jean Piaget (1896-1980)는 이런 과정을 <1차 순환반응>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아의 핵심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 시기 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기는 점차로 자신과 외부 세계가 구분되어 있음을 깨달아 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팔을 움직일 때 우리는 세 가지 요소를 참조합니다. 1. 움직여야겠다는 마음 (즉 의지), 2. 움직이는 동안 팔에서 되돌아오는 감각, 그리고 3. 그 움직임을 보는 것이지요. 이 셋이 일치할 때 “아, 내가 내 팔을 움직이고 있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만약 의지는 있으나 감각이나 움직임이 없다면, 점차 아기는 “그게 내 팔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팔이라 어찌할 수가 없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혹은 감각이나 움직임은 있으나 내 의지가 아니었다면 “내 팔을 움직인 것은 다른 사람이구나.”하고 깨달을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구분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몸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신체편집분열증, somatoparaphrenia), 마비된 자신의 왼쪽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우기는 (질병인식불능증, anosognosia) 증상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우반구 증후군이라는 다소 느슨한 명칭 하에 묶여있는, 신경학의 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경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마크 솜즈 Mark Solms는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가 대상애 수준에서 자기애 수준으로 퇴행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설명을 내어놓았습니다. 아무튼 난해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신체의 범위를 인지하는 능력이 간단히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정신과 의사 밀튼 에릭슨 Milton H. Erickson(1901-1980)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17세경 소아마비에 감염되어 온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모두가 죽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병상에 누워서 아기 여동생이 걸음마를 익히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했습니다. 동생은 몇 발짝 걷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능숙하게 걷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뭔가를 깨달은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스스로 움직이는 연습을 시작합니다. 근육들이 이미 기억하고 있던 바를 찬찬히 되살려 나가자 그는 결국 다시 말을 하고, 팔을 움직이고,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우리 모두는 발달 과제들을 무리 없이 이룩해 온 사람들입니다. 이미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나 레이업 슛을 넣는 일, 다이어트를 하는 일, 그밖에 어려운 일들 역시 충분히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갖은 시행착오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개인적 도전의 역사를 다시 떠올려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