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용수 응급의학과 전문의]

 

펜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부디 후유증 없이 일어나기를...

 

사고가 강원도에서 발생한 건 불행 중 다행. 모든 학생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는 고압산소가 치료의 핵심인데, 이번처럼 한 번에 다수 환자가 발생하면 치료 가능한 건 강원도뿐이다.

고압산소 탱크는 크게 두 가지. 1인용 모노챔버와 다인용 멀티챔버가 있다. 일산화탄소 치료 코스는 보통 1사이클에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누군가 사용 중이면, 다음 환자는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모노챔버의 단점이다. 한 번에 1명씩 줄을 서야 한다. 다수 환자 처리는 멀티챔버만 가능하다. 이런 멀티챔버를 의료용으로 가동 가능한 건 강원도가 유일하다.

서울이나 수도권이었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보통은 자원이 집중된 서울이 의료 수준 또한 높은 법인데,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난 이유는 무얼까?
 

사진_sbs


고압챔버 부족 얘기는 십여 년 이상 계속되었다. 찾아보면 쉽게 나온다. 전국에 10곳도 채 되지 않는단 걸 지적하는 뉴스가 꾸준히 있어왔다. 오히려 최근엔 좀 늘어난 상태이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리면, 과거엔 거의 모든 응급실에 고압챔버가 있었다. 전국 수백 곳에. 연탄이 주요 난방 수단인 시절 얘기다. 연탄가스 중독이 너무 흔해 뉴스도 되지 않던 시절. 그만큼 환자가 많으니 치료시설도 많았다.

시대가 변했다. 연탄은 더 이상 주요 난방 수단이 아니다. 연탄가스 중독 환자가 줄었다. 각 병원의 고압챔버가 찬밥이 되었다. 시대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철덩어리. 그게 바로 고압산소챔버다.

이 기계는 몇몇 병원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는데. 여전히 연탄을 쓰는 가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사고는 늘 가난한 계층에 집중된다.) 또 가끔은 번개탄으로 자살을 시도한 환자도 있었다.

치료 가능한 몇몇 병원이 거점 역할을 했다. 연탄가스 환자가 발생하면 이 병원들로 옮겨졌다. 수요가 적으니 몇몇만 남고, 거의 모든 병원은 기계를 처분했다.

 

어떤 뉴스에서 고압산소 치료의 수가가 3만원이라고 보았다. (나는 내가 치료하면서도 가격을 모른다.) 1시간 반 동안 의료진이 꼼짝없이 붙어있는 가격이. 그러니 새 기계를 사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수십 년이 지난 기계를 사용해 온 것이다. 이렇게 낮은 수가가 유지된 이유는 뭘까?

일부러 가격을 억누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조만간 사라질 치료다. 가끔 환자가 생겼지만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이미 십수 년 전에 관심에서 사라진 질병이다. 그러니 그때 수가가 지금껏 그대로 유지된 게 아니겠는가? 병원들도 똑같은 판단을 했기에, 수가를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기계를 정리했을 테고 말이다.

 

건강보험은 이런 재난 상황 대처에 집중하는 게 좋겠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눈에 보이는(생색이 나는) 보장성 강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즉, 연탄가스 환자들은 완벽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치료를 위해 의사의 자비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3만원에 기꺼이 시간과 장비를 투자해 줄 병원을 찾아야 했다.

몇몇 병원이 그 사각지대를 도맡았다. 아직 연탄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인접지역에 농어촌이 있는 곳. 그래서 최소한의 수요는 있는 곳. 더불어 진료비 압박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병원. 그곳이 암묵적인 거점이 되었다. 이 몇몇 병원이 수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껏 공공의 역할을 도맡아 온 것이 급성 일산화탄소 중독의 역사이다.

 

문제가 생긴 건 최근이다. 십여 년 사이 환자가 다시 늘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번개탄 자살시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때 유명 연예인의 자살 보도 이후, 연탄가스는 자살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어느새 자살 수단 통계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발전으로 여가생활이 늘었다는 점이다. 난방용 연탄가스 사용 계층은 줄었지만, 대신 캠프 등에서 번개탄 사고가 잦아졌다.

우리 병원은 작년에 연간 180여 회의 고압산소 치료기를 돌렸으니, 거의 이틀에 한 번씩은 기계를 가동했다. 기본치료만 하는 환자까지 합하면 거의 매일 환자가 온 셈이다. 그만큼 숫자가 늘었다.

내 전공의 시절,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는 뚜렷이 계절을 탔다. 날씨가 풀리면 환자가 줄었고, 겨울이 되면 환자가 늘었다. 반면 요즘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수요가 다시 생겼지만 수가는 그대로. 수요가 늘었지만 예전 전성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당연히 새로 시장에 진입할 병원은 없다. 자연히 몇몇 병원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언제고 사건이 터질만한 상황이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압산소 치료기가 전국에 많이 늘어났다. 일산화탄소 중독 때문이 아니다. 잠수병 때문에 생긴 시설들이다. 위치가 동해안과 남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고압산소챔버는 연탄가스뿐 아니라 잠수병 치료에도 쓰인다. 해군이나 스쿠버다이버 등을 위한 시설이다.

안타깝지만 이 시설들에서 연탄가스 중독 환자는 처리가 불가능하다.

일산화탄소 중독 치료는 고압산소만 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뇌와 심장에 치명적이라, 이 두 부위에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필요하다.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중환자실 집중치료 또한 기본 요구사항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고압산소 치료는 외국에서 핫이슈다. 각광받는 치료다. 물론 일산화탄소 중독 때문은 아니다. ‘상처’ 치유에 대한 뛰어난 효과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감염, 상처 등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시설을 갖추는 병원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선 남의 나라 일이다. 경직된 보험체계는 신의료를 받아들이는 데 무척 느리다. 이미 오래전에 입증된 치료지만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다. 상처 치료에 쓰는 건 인정해주지 않는다. 전 세계 트렌드에 맞게 상처로 수익창출이 가능했다면, 고압챔버를 갖춘 병원들이 늘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겸사겸사 연탄가스에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잠수병도 덤이다.

모노챔버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더 있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중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압력이 달라 기계 연결이 불가능하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부속 도관 등이 개발되어 있다. 외국에선 이미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쓰지 못한다. 식약청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이 워낙 까다롭다 보니 통과가 쉽지 않다.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중인데, 이 때문에 오늘도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다. 까다로운 규정의 문구 하나하나를 교리처럼 들이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장 환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걸 보자니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워낙 할 말이 많아 중구난방으로 쏟아냈다. 일산화탄소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공존하는 영역이다. 가격을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정도 수요라면 장사를 접는 게 맞다. 지금은 수요가 늘었지만 언제 다시 줄어들지 모른다. 이런 분야에 투자는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연탄가스 중독 환자는 치료 포기 선언을 하고, 그 돈으로 수많은 감기 환자의 치료비를 깎아주는 게 경제학적 효용이 클지도 모른다.

이번 펜션 사건을 계기로,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늘리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멀티챔버를 공급하려는 모양이다. 왜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야만 대책이 나오는 건지, 그게 불만이다. 뭔가 여론이 일면, 포퓰리즘 땜빵식의 정책이 나오는 것도 탐탁지 않다.

부디 긴 안목으로, 우리나라 의료를 위한 최고의 선택을 논의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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