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조현병은 환청과 망상, 사고장애를 주 증상으로 하는 질환으로,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보다는 약물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약물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증상이 호전되지만,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던 병이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일본의학용어를 번역하여 사용하던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는 정신병리를 잘 반영하지 못 하여 사람들이 다중인격장애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현병은 현악기의 '현'이 잘 조율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지며, 핵심병리인 '지각/사고(perception/thought)의 왜곡'을 잘 반영하고 있다.

 

조현병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와 같은 관계사고(idea of reference)이며, 지각/사고의 왜곡을 통해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냥 나를 보는데, 뇌에서 지각/사고의 왜곡을 거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지각된다. 사람들은 그냥 서로 농담을 하며 웃고 있는데, 왠지 내 이야기를 하며 나를 비웃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뇌가 계속 왜곡하다보면,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거절하는 것(rejection)에 매우 민감해진다. 이들은 대인관계적 측면이 미숙한 경우가 많으며, 약물치료와 더불어 사회기술훈련(social skill training) 역시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정신병리가 조금 더 진행되면, 환청이나 망상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치료자가 약물치료를 할 때 환청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환청의 크기가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확인하여 약물 효과를 판정하고, 약물의 용량과 종류를 조정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자는 환청의 내용을 묻는다. 환청의 내용은 그 사람의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통해 환자를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픽사베이

최근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충격적이다. 모임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자주 가는 강남역에서, 아무 이유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살인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조현병으로 4회 가량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고,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단순히 정신병자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환청이 뇌의 생리학적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 해도 환청의 내용은 심리를 반영하고 심리는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정신 증상이 영향을 준다 해도 진술 내용은 그 사람의 심리와 사회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기 진술 내용은 '여성 혐오'보다는 '거절감 및 공격성(aggression)'과 더욱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과거에 용의자는 미숙한 또 부적절한 방식으로 여성에게 다가갔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는 그가 기대했던 결과와 다른 결과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가 약물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지각/사고의 왜곡이 작용했다면 그는 더 큰 거절감을 느끼고, '나를 거절해? 니가 뭔데' 이런 식의 공격성이 누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험이 여러 여성에게서 반복되었다면, 그렇게 누적된 공격성이 불특정 여성에게 표출되어 살인 행위까지 이르렀을 수도 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는 '여성 혐오'는 주로 여성의 과도한 허영심, 이기심 등을 타겟으로 하며, '여성이 남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여성을 혐오한다'는 논리는 일반적이지 않다. 사실 혐오와 공격성은 서로 다른 감정이다. 혐오는 일차적으로 맛이나 냄새와 같은 감각과 관련되어 대상을 회피하게 만든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혐오(disgust)를 담당하는 영역은 섬엽(insula)이고, 공격성/폭력(aggression/violence)는 뇌간 시스템(sensitized/dysregulated brainstem system)과 대뇌피질 시스템(poorly modulated corticl system)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이 용의자가 여성을 혐오하는 가치관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그랬다'는 이 문장 하나만 놓고 볼 때는 '여성 혐오'보다는 '거절감과 이에 대한 분노'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거절감에 취약하고 쉽게 '무시 받는다'고 느끼는 심리적인 측면이 지각/사고의 왜곡이 특징인 조현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결코 범죄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강력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안전에 대한 대책이 잘 세워지기를 바란다. 또한 잘 치료받고 지내는 조현병 환자들이 또 다른 편견으로 고통 받지 않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