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동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제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점심 식사 후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시지 않으면 허전함을 넘어서서 갈망이 생긴다. 이 정도 되면 기호식품이 아니라 꼭 필요한 식량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사진_픽셀


내가 처음으로 커피 맛을 봤던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 옆에서 엄마가 마시던 커피 둘, 설탕 둘, 크림 세 개가 들어간 커피를 조금 남겨달라고 떼써서 맛을 봤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달콤한 그 새로운 향과 맛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던지 그 후로 계속 엄마가 커피를 마실 때면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남겨달라고 떼를 썼고 엄마가 남겨준 한 모금의 커피를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조금씩 아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좀 더 성장해서 커피 아이스크림이 나왔을 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금처럼 더운 계절이었고 하굣길에 커피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보통 같으면 하나 사서 반을 잘라 친구랑 나눠먹기 마련인데 마침 혼자였던 차에  그 긴 커피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에 오기도 전에 다 먹어 버렸다.

문제는 그 후 오후가 깊어지자 가슴이 마구 콩닥콩닥 뛰었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 만큼 답답해졌던 것 같다. 무언가 큰일이 닥친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어린 나를 압도했고 병원에 가서 심전도를 찍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던 것 같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본인도 가슴 두근거림이 있었던 엄마는 나에게 커피 금지령을 내렸고 커피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커피 향만 나는 사탕도 한동안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난 뒤에야 제대로 알게 된 것이지만, 어린 시절 커피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에 내게 나타났던 반응은 카페인 중독증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진단 기준(DSM-5)에 따르면 카페인 중독은,

A. 우선 하루 250mg  이상의 카페인 섭취가 있었을 때 발생할 수 있으며,

B. 다음에 말하는 증상 중 5가지 혹은 이상이 나타났을 때,
  1. 안절부절못함, 가만히 있지 못함
  2. 예민함, 신경과민
  3. 흥분 
  4. 불면
  5. 안면홍조
  6. 이뇨작용
  7. 위장관 장애 (소화불량, 속 쓰림, 설사, 변비...)
  8. 근육의 경련
  9. 횡설수설하는 말과 생각
 10. 빈맥 혹은 부정맥 (가슴 두근거림...)
 11. 지치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는 어떤 시기
 12. 정신운동성 초조

C. B 항목의 증상들이 사회적, 직업적 영역 및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상당한 불편함이나 손상을 일으킬 때,

D. 이러한 상태가 다른 약물이나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닐 때, 카페인 중독으로 진단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커피를 3잔 이상 마시고 나면 위에 언급되어 있는 카페인 중독 증상 중 일부가 나타나기도 한다. 몹시 피로하여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라도 마신 날은 더 어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커피가 주는 각성효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커피 자체가 너무 맛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사람을 만나고 사업상의 만남을 가지며 심지어 면접도 카페에서 이뤄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 많고도 중요한 일들이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벌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 없이 살아가기는 힘들다. 그러나 커피 말고도 에너지 드링크, 콜라, 초콜릿, 차 등 카페인 과잉에 빠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카페인과 관련한 중독증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내 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준다면 카페인 섭취와 관련해서 분명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건강한 카페인 섭취로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까지 챙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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