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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힙합⑥] 힙합의 핵심코드 1. 셀프메이드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마음과 힙합> 06
김봉현 | 승인 2018.12.01 09:04

마음과 힙합에 관해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힙합의 핵심코드 몇 가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단순히 힙합 음악만 들어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힙합은 음악인 동시에 문화이고 더 나아가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몇 주간은 ‘힙합 치유’와 맞닿아 있는 힙합의 코드 몇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개념은 ‘셀프메이드’(Selfmade)다. 사전을 찾아보면 ‘자수성가한’이라는 뜻으로 나오는 단어다. 그리고 힙합 속 셀프메이드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개념을 더 동원해야 한다.

 

<게토(Ghetto)>

힙합은 흑인이 만들어낸 음악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흑인이 만들어낸 음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에 사는 미국 흑인이 만들어낸 음악이다. ‘게토’(Ghetto)에 사는 흑인이 만들어낸 음악이라는 뜻이다. 게토의 사전적 의미는 대략 이렇다. ‘사회적/경제적으로 방치되어 있는 소수 인종/민족이 집단을 이루어 사는 도시의 빈민가’.

흑인에게 게토는 역경의 공간이자 탈출하고픈 공간이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범죄와 불법 마약거래가 일어나며 개인의 의지를 환경과 시스템이 지배하는 위험하고 비극적인 공간. 제이지(Jay-Z)의 출생지로 알려진 브루클린(brooklyn)의 공공주택단지 마시 프로젝트(marcy projects) 역시 게토 중 한 곳이었다. 80년대 활발한 마약 거래의 본고장이었던 이곳은 그 명성답게 치안이 불안했다. 제이지의 한 가사 구절에 따르면 ‘매일 목숨을 위협받는 전쟁터 같은 곳(‘where niggas pull your card’: 타인이 내 주민등록증을 말소해버리는 곳, 즉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한국에는 총도 마약도 없기에 게토의 정확한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그곳에서 살아간다면 탈출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당연히 탈출하고 싶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개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도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는 있다. 더 안전하고 좋은 동네로 가고 싶다는 욕구는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게토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흑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졌다. 바로 ‘랩 스타(Rap Star)’와 ‘NBA 스타’다.
 

사진_픽사베이


<랩 스타(Rap Star)>

랩 스타가 되는 것은 게토를 탈출하기 위한 흑인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만들어낸 음악으로 성공하는 거야! 내 랩이 히트하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고 다른 동네로 갈 수 있어!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실제로 랩 스타들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는 이제 와서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어떤 래퍼는 전용기를 가지고 있고 비버리힐즈의 대저택에 산다. 또 어떤 래퍼는 전용기까진 없더라도 보통사람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이미 벌어놓았다. 랩 스타가 되면 게토를 탈출할 수 있다.

 

<NBA 스타>

NBA 스타가 되는 것은 게토를 탈출하기 위한 흑인의 두 번째 방법이었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는 자신의 노래 ‘Things Done Changed’에서 이렇게 말했다.

If I wasn't in the rap game
I'd probably have a key knee-deep in the crack game
내가 만약 랩을 하지 않았다면 마약을 팔고 있겠지

Because the streets is a short stop:
Either you're slinging crack rock or you got a wicked jump shot
이 거리에서 살아남으려면 넌 마약을 팔거나 농구를 해야 해

맞다. 힙합은 흑인의 음악이고 농구는 흑인의 스포츠다. 브라질 아이들이 축구공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면 미국의 흑인 아이들에게는 마이크와 농구공이 있는 셈이다. 랩 스타와 NBA 스타 간의 동료애와 동질의식은 이 연장선 상에서 이해 가능하다. 제이지와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와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는 왜 친할까. 물론 유명인사 간의 단순한 교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 사이에는 인종과 계층에 기반한 연대의식이 존재한다. “우리는 게토를 탈출했어! 넌 농구공으로, 난 마이크로 말이야!”
 

사진_픽셀


<셀프메이드>

이러한 맥락 위에서 래퍼들의 셀프메이드는 성립한다.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빈손에서 부자로, 보잘것없는 삶에서 누군가의 롤모델로, 목숨이 위협받는 삶에서 안전한 삶으로, 그리고 나의 재능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 부와 명예를 얻는 이상적인 삶으로. 이렇게 볼 때 드레이크(Drake)의 ‘Started From The Bottom’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Started from the bottom now we're here
밑바닥에서 시작해 이제 우린 여기에서 놀지

Started from the bottom now my whole team fucking here
밑바닥에서 시작해 이제 내 친구들 다 여기에서 놀아

한국 래퍼 더콰이엇(The Quiett)의 가사도 눈여겨볼만하다. 다음은 ‘Came From The Bottom’의 가사다.

그래 난 바닥에서 제일 위로
광명시가 만든 hometown rap hero
Illionaire CEO 명함을 내밀어
나를 흉내 내지 말고 그냥 내 뒤로
내가 겪어온 것들이 뭐든 간에 나는 이겨냈어 보란 듯이
할 일을 했을 뿐, 사람들이 뭐라든지
난 알아, 래퍼들이 얼마나 놀았는지
그래서 나는 신경 안 써, 걔들이 뭐라든지

물론 지금의 더콰이엇은 랩 스타다. ‘쇼미더머니’ 프로듀서로도 몇 번이나 출연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 광명의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다음 가사를 보자.

중요한 건 난 이런 놈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렇기 땜에 내가 내 자랑을 하는 거지
내가 가진 것들이 만약 부모님을 빌려
얻은 거라면 그건 자랑거리가 아닐 걸
광명시 한 서민적인 동네, 그게 나의 출신
랩을 하고 나서는 여기저기서 무시
당하곤 했지만 나는 절대로 무릎 꿇지 않았어
I'ma tell u haters DUECES
이런 말을 듣곤 해, "이 자식 많이 컸네"
그럼 나는 말하지 "거 별거 아니던데"

이 가사는 래퍼들의 ‘스웩’ 뒤에 ‘셀프메이드’가 있음을 알려준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았거나, 바닥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가사는 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셀프메이드가 힙합의 핵심코드임을 모르는 사람에게 래퍼들의 스웩은 어쩌면 ‘허세’에 불과할 수도 있다(물론 나는 래퍼들의 스웩이 허세라는 좁은 단어에 갇히는 것도, 또 부정적인 뉘앙스로 정의되는 것 자체도 못마땅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러나 래퍼들의 스웩이 셀프메이드 위에 존재할 때 비로소 온전히 성립함을 아는 사람에게 래퍼들의 가사와 태도는 ‘멋’이자 ‘자기증명’인 동시에 ‘귀감’이 된다.

힙합 속 셀프메이드는 힙합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정상에 올라왔다’는 힙합의 문법은 같은/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강렬한 매력을 발휘했다. 빈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올라가야 할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고군분투해 달성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늘 열정적인 삶의 태도는 ‘빈손과는 무관한’ 사람에게도 삶의 에너지이자 동기부여로 작용했던 것이다.

셀프메이드는 지금껏 힙합의 큰 힘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또, 세월이 아무리 지난다고 해도 영원히 힙합의 고전적인 가치로 남게 될 것이다.

 

* 김봉현

작가, 힙합 저널리스트. 현재 <에스콰이어> <씨네2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CGV와 개최했으며 랩 다큐멘터리 <리스펙트>를 기획하고 개봉했다.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 <블랙아웃>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힙합 에볼루션》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힙합의 시학》 《The Rap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김경주 시인, 래퍼 엠씨메타와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셋이 《일인시위》 단행본을 출간했다.

 

김봉현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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