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느낌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아기를 집으로 데려오던 순간의 설렘과 긴장, 곧이어 뒤따르는 부담감 말입니다. 우리는 막 우리를 찾아온 주인공의 리듬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불편해서 울고 있는지 잘 짐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알 수 없이 우는 갓난아기를 붙잡고 함께 울고 싶어 졌다고 하소연하는 새내기 부모님들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나만 이런 것인가?’, ‘나는 좋은 부모의 자질을 갖지 못한 것일까?’ 하며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이는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입니다. 갓난아기가 세상에 대해 처음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역시 아기에 대해 처음 경험하니까요.

아기를 처음 돌보기 시작할 무렵 대부분의 초보 부모들은 아기의 안녕에 대해 걱정하게 됩니다.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충분히 영양을 주고는 있는지, 실내 온도를 아기에게 적당히 잘 맞춰 주고 있는지, 혹시 나의 부주의로 아기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등등 무거운 동시에 사소한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끊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내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아기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에 가까울 것입니다.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어머니가 갓난아기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않고 돌보는 상태를 [일차 모성 몰입 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이라 명명했습니다. 이는 아기가 뭔가 요구하고 불편한 기색을 보일 때, 어머니가 그 기색을 마치 자기의 경험인 양 느끼며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어머니와 아기가 정신적으로 둘 two-ness 인 동시에 하나 one-ness가 되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결국 집착에 가까울 만큼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살피는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첨언컨대 그의 활동 시대를 감안하고, 전통적인 육아에서 평등주의적 육아로 점차 변모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세태를 반영한다면 지금은 “모성” 몰입을 “부모성” 몰입이라고 치환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한편 부모가 된다는 일생의 큰 사건이 온통 감격과 감동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언제나 피치 못할 부담을 수반합니다. 특히나 자신을 도와줄 가족들이나 사회적 지원이 부족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됨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합니다. 아기의 요구에 민감히 부흥해야 하며, 아기를 지켜줄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휴일에 아무런 제약 없이 친구를 만난다던가, 마음껏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던가 하는 예전의 일상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나를 고뇌하게 만드는 여러 감정들과도 맞닥뜨려야 합니다. 여러 가지 기회들, 이를테면 좋은 직장이나 학업을,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정시 식사나 수면조차도 아기를 돌봄으로 포기해야만 할 때 느껴지는 좌절과 갈등, 그리고 그에 파생되는 죄책감과도 마주해야만 합니다.

출산 후 10~20%가량의 어머니는 산후 우울증을 겪습니다. 아울러 간과하기 쉽지만 아버지의 산후 우울증 사례 역시 존재합니다. 한 메타 분석 연구를 인용하자면 열 명당 한 명 꼴의 아버지가 우울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호르몬의 변화, 아기 돌봄으로 인한 수면 박탈 등과 더불어 역할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산후 우울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여 출산 이후의 감정적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부모의 괴로움은 아기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힘들어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한 아동들은 향후 우울, 불안 등의 문제를 호소하기 쉽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산후 우울증에서 벗어나게끔 도움을 줍니다. 특히나 역할 갈등을 다루는데 특화된 대인관계 정신치료(Interpersonal Psychotherapy)는 비교적 시간이 적게 들면서도 충분히 효과가 입증된 면담 치료 기법으로, 산후 우울증을 겪는 이들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치료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만화에서 다시 묘사하겠습니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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