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마음과 힙합> 05

[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개인적인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내겐 우울증이 있었다. 거의 매일 우울했고, 일상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고, 피로감에 시달렸다. 게을러졌고, 그런 나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공부에 집중을 하기도 어려웠다.

모든 우울증에는 이유가 있다. 나의 우울증에도 이유가 있었다.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비평준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였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정말 컸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80점 아래에 점수를 거의 받은 적이 없던 내가 어느 날엔가는 수학 점수를 30점을 받았다. 시험지를 구겨서 서랍 속에 던져버렸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어려운 게 공부 하나뿐이었다면 좋았을 걸. 사소한 이유로 중학교 때부터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는 나를 외면했다. 학생 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내가 처한 현실은 정말로 절망적이었다. 그 시절 학생 심리상담 따위는 없었다. 고등학생의 우울은 각자가 알아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그런 때에 내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 주었던 것이 힙합 음악이다.
 

사진_픽셀


토마스 셰퍼(Thomas Schafer) 등의 심리학자들은 음악을 듣는 것의 심리적 기능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핵심이 되는 세 가지 기능은 다음과 같다: 감정의 조절, 자기 인식의 확대, 사회적 관계의 표현.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아도 힙합을 통해 이 세 가지 기능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다. 교실에서, 혹은 집에서 억울한 상황을 겪어서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올 때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귀가 터질 것 같이 높은 볼륨으로 두 세곡 듣고 나면 잠잠해지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힙합을 통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듀스 3집에 수록된 <메시지>라는 곡의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는 나는 피노키오다. 남들에 손끝에 앞날이 달려 있다. 비록 힘없이 무너지더라도 이제 그 줄을 끊어 버린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삶을 살자고. 어른들로부터 배우지 못한 가르침을 음악을 통해 받았고 자기 인식의 확대를 경험했다. 또한 비록 중학교 시절의 절친한 친구와는 절연하게 되었지만 힙합 CD를 돌려 듣는 친구들이 새로 생겨났다. 나만의 경험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듣는 장르 별로 친구들이 무리 지어지기도 했다. 걸그룹의 음악을 듣는 아이들, 락을 듣는 아이들 등등. 나는 힙합을 듣는 아이였다. 음악을 통해 우린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갔다.

투팍(2Pac)의 대표곡 <미 어갠스트 더 월드(Me against the world)>의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때때로 힘들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거 하나만 기억해. 어두운 밤이 지나면 더 밝은 날이 온다는 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넌 할 수 있어.” 나는 힙합을 통해 다독임을 받고 성장했다. 힙합이 내 기를 살렸다. 지금의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말하면 힙합은 내게 역량 강화(empowerment)를 제공한 것이다.

텍사스 대학의 사회복지학 교수인 라파엘 트래비스(Raphael Travis)는 힙합의 역량 강화(empowerment)의 기능을 여러 차원에서 설명한다.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존감(self-esteem), 회복탄력성(resilience), 성장(growth)과 관련된다. 자존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은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고난 속에서도 극복을 위해 애쓰는 힘이다. 성장은 지금의 존재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개념들은 힙합의 핵심 가치라 할 수 있는 킵잇리얼(keep it real), 허슬(hustle), 네거티브 투 포지티브(negative to positive), 셀프메이드(self-made)와도 닿아있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뿐만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전개한 이론을 통해서도 힙합의 치유적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임상심리학자 돈 엘리건(Don Elligan)은 2000년에 최초로 랩 치료(Rap therap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학교 안에서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적대적 반항장애나 품행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만나 상담을 했다. 그럴 때에 특히 면담실에서 말 한마디 안 하는, 협조적이지 않은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아이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전략으로 그 아이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낀 채 랩을 따라서 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에 그들이 듣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면 그들은 친숙하고 편안한 면담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힙합을 좋아한다고 할 때에 어떤 래퍼의 랩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데에서 랩 치료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1단계: 초기평가(assessment)]. 좋아하는 래퍼가 있다면 치료자는 그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관계 형성이 돈독하게 이루어진다[2단계: 관계 형성(relationship building)]. 그러고 나서 치료자를 신뢰하는 바탕 안에서 좋아하는 랩의 가사의 뜻을 함께 해석하고(랩 또한 시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본다[3단계: 도전(challenge the lyrics)]. 이에 대해 거부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도전적 질문은 아이들로 하여금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래퍼의 어떠한 면모를 닮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과정까지 몇 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토대로 마지막 과정에 진입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만의 랩 가사나 시, 스포큰워드를 써보는 것이다[4단계: 랩 가사 써보기(begin writing)]. 이때 그들이 경험하는 고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이미지로 그려보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사 쓰기와 랩 내뱉기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5단계인 유지(maintenance) 단계이다.
 

사진_픽사베이


힙합을 치유에 활용하는 기관도 있다.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처음으로 설립된 힙합치유 기관인 ‘비트, 라임스, 앤 라이프(Beats, Rhymes, and Life, 이하 BRL)’가 바로 그것이다. 흑인이나 라틴계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특히 정신과 치료에 대한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나 라틴계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고비용의 정신과 치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배경이나 의료에 대한 불신으로 인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스티그마(stigma)도 심하다(이는 한국사회도 마찬가지 여서 더욱 안타깝다). 문제 파악을 중요시하고, 병적인 부분을 고치는 고전적인 치료 모델은 또 다른 낙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문화를 공감하고, 강점을 살려줄 치료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바로 BRL이 시작되었다. 청소년들은 BRL의 힙합치유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기의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한다. 자신의 일상을, 자신만의 이야기를 표현할 공간을 그들에게 허용한다. 마음속에 떠오른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만나고 랩이라는 건강한 방식으로 드러내게끔 한다. BRL은 학교나 지역사회 기관을 비롯하여 소년원 및 고아원에 속한 청소년들에게 16주로 이루어진 힙합치유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힙합의 역사를 비롯하여 힙합에 대해 알고, 나의 마음에 대해 알고, 내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프로그램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랩 가사로 써보고, 랩을 내뱉는 것이다. 함께하는 친구들과 함께 싸이퍼(cypher)라는 안전지대를 이루어서 랩을 하기도 하고, 레코딩 세션을 갖기도 하며, 다 같이 공연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정신건강전문가와 랩을 지도하는 아티스트가 함께 진행한다.

어떤가? 새롭지 않은가? 앞서 얘기했듯이 힙합치유는 병적 상태나 약점을 고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강점을 기반에 둔 치유 프로그램이다. 내면의 어려움이 문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여 처벌 위주로 해결하려고 하는 우리 사회에서 힙합을 이용한 치유는 참신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힙합의 시작에서도 함께 본 바와 같이 힙합은 콘크리트 사이에서 자라난 장미와도 같다. 힙합에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힙합에는 회복탄력성이 깃들어 있다. 힙합에는 희망과 삶에 대한 긍정이 담겨있다. 자기를 표현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써 힙합, 그리고 힙합치유는 마음 둘 곳 없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한줄기 시원한 생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게 힙합이 그러했듯이.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