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장애 중 굳이 의처증 증상을 뽑은 건, 별다른 이유나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망상장애 중 질투형 망상은 일반적인 망상장애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남성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임상경험에서도 자주 접해왔던 터라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의부증, 남편을 의심하는 증상 또한 생기는 기전이나 과정 자체는 이와 거의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중년 이후의 남성에서는 특히, 중년의 위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존감의 저하가 의처증 증상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런 의처증 증상이 생기는 요인 중에 퇴직과 성기능장애가 아주 큰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 외 몸이 아파서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축소된 대인관계 등 또한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을 종종 경험하였다.

예전 어르신들은 가부장적이고 남편이 가장 역할을 하면서 경제력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새 부부들은 예전과 달리 맞벌이라서 예전과는 좀 다르겠지만) 그런 역할이 어느 순간 무너지게 되면, 자존감의 역전이 쉽게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자아가 약해지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면서 그런 현실을 부정하거나, 오히려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쓰고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등의 미숙한 방어기제를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차곡차곡 질투형 망상이 견고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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