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천영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은 상담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촉망받는 무역상사의 직원으로 일본 유학까지 준비하고 있던 그가 필로폰(히로뽕)을 만난 것은 31살 때였습니다. 오랜만에 나간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서였습니다. 평소 따르던 학교 선배의 권유였죠.

“이거 피로회복제 같은 건데 죽여줘...”

주사기를 보고는 흠칫했지만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효과는 음... 이건 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설명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대학생 때 호주로 어학연수 가서 외국 친구들과 재미로 피워 본 대마초하고는 상대도 안 되었죠. 다음 날 정시 출근해서 일도 열심히 했고 한 2, 3일은 괜히 좀 붕 뜬 느낌도 들고 했답니다.

내심 다행이었던 것은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을 안 하고 있으면 이불 뒤집어쓰고 몸도 덜덜 떨고 헛소리도 하고 막 그러던데.... 이건 중독되고 그런 게 아니라던 그 선배의 말처럼 필로폰을 안 하고 있는 동안에도 몸이 힘든 것도 아니고, 뭐 크게 그게 하고 싶어서 미치겠는 것도 아니고....

그 날 이후로도 열심히 일을 했고 외국을 드나드는 선배가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를 다녀올 때마다 꼬박꼬박 돈 좀 챙겨드리고 얻어서 하게 되었고... 솔직히 필로폰을 한 상태에서 하는 잠자리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는 결국 싫다고 하는 여자 친구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여자 친구에게도 필로폰을 놓아주고는 같이 잠자리를 했죠.
 

사진_픽사베이


뭐 그냥 그렇게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고 별문제 없이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자기 자신이 많이 예민해지고, 화도 잘 내고 이전보다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고 업무 효율은 떨어지고, 가족은 물론 여자 친구와 말다툼하는 일도 잦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말마다 신나게 페달을 밟아대던 자전거 동호회도 안 나간 지 오래고... 결국 일본 주재원으로 파견 가는 것이 무산되고, 승진에서 탈락되고 나니 더 우울해지고, 의욕도 없어지고 그때마다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필로폰을 구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뒤를 밟고 있는 것 같고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그런 느낌이 너무 강렬하고 현실적으로 밀려와서 며칠간 집 밖을 못 나간 적도 있고요. 한 번은 집 앞 편의점에 담배 사러 들어갔다가 밖에 세워져 있는 배달 오토바이들과 수상하게 움직이는 택배기사들이 분명히 형사일 거라는 생각에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냉장고 같은 편의점 안에 6시간 동안이나 앉아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들은 점점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려고 누우면 문 뒤에서 이상한 사람들의 수군거림들, “지금 들어가 잡을까?”, “지금 덮칠까?” 저쪽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으면 분명히 내 흉을 본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고, 이상한 그림자가 자기 옆을 쓱 스치고 지나가고, 차를 몰고 대로변으로 나가면 백미러로 똑같은 번호판을 가진 하얀색 그랜져 5대가 따라붙어 쫓아옵니다.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을 나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외우게 된지는 이미 오래전부터입니다.

그런 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화를 못 참는 겁니다. 직장에서도 뭐 물론 진작부터 일에 흥미가 떨어졌지만 결국 잔소리하는 상사에게 쌍욕을 하고 사무실을 다 때려 부수다시피 하고 나왔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욕을 하고 심지어 여자 친구에게까지 손찌검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필로폰이라는 게 내가 안 한다고 마음만 먹으면 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방금 5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다시 필로폰을 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음에도 정작 내 앞에 작대기(주사기)가 턱 하고 놓이면 그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치고 훅 쏠리는 느낌들, 항문이 간질간질하고 똥 마려운 느낌들이 미친 듯이 올라오더랍니다. 도저히 안 하고는 못 배기겠는 그런 느낌들 말이죠. 자신이 끔찍한 덫에 중독되었다고 느낀 건 그때였다고 합니다. 결심이고 나발이고 주사기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보면서 더욱 절망했죠.

결국 첫 징역을 살고 마약 중독자들만 한방에 따로 모아서 수감되어 보내게 된 첫날밤 눈물로 결심했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시 하나 봐라!”

정작 출소를 하고 뭘 다시 해 보려 해도 잘 안되고, 사람들하고는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고, 뭘 해도 그리 재미도 없고 우울하고 세상 사는 낙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약을 구하려고 전화를 돌렸죠. 뭐 이젠 예전의 그 선배 아니어도 약 구해다 줄 사람이 많습니다. 징역을 사는 내내 같은 방을 쓰며 24시간 뽕 얘기로 날을 지새던 든든한 마약 중독자 동기들이 생겼으니 말이죠. 그래서 다들 교도소를 ‘학교’라고 하나 봅니다.

그렇게 마약 전과 8범에 15년 가까운 세월이 날아가버렸습니다. 이미 가족들은 전화도 받지 않고, 주변의 친구라고는 약쟁이(마약 중독자)들 밖에 없는 현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대가는 너무도 혹독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기도 합니다. 단 한 번도 학교 보건 시간이건 어디서건 그저 막연히 마약 하면 안 된다고만 들었었지, 필로폰이란 것이 단 한 번만 손대면 인생을 날려버린다는 것을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죠.

 

우리 사회에서 마약류 중독에 대한 조기 교육이 너무도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진료실에서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호기심에서, 잘 모르고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필로폰이 너무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꼭 해야지 마음을 먹고, 돈을 모아서 필로폰을 사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필로폰 중독자가 된 사람들은 없습니다.

마약중독자들이 저지른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어찌 보면 이들조차도 마약 중독 문제에 대해 애써 모른 체하고 간과해 온 우리 사회의 무책임함이 만든 희생자일지도 모릅니다. 막연하게 하지 말라는 식의 계도와 홍보로는 어림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약물들이 어떤 폐해를 초래하는지를 정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말이죠.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