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은 마음의 병?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에서 익숙하게 느껴지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생존과 안위를 걱정하는 삶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이 드디어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 불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가장 흔한 마음의 병인 것이다. 우울증은 다른 신체 질환과 달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순간에 삶을 집어삼키는 무서운 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 우울증이 신체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음'은 뇌와 신체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뇌세포 간에 교환되는 신경전달물질, 신체로의 호르몬 분비, 인체 내 여러 신호 전달 등이 교차하며 복잡한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게 된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들에서 신체나 활력의 부정적 변화는 그 때문에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을 진단하는 데 있어 단순히 우울한 기분뿐만 아니라 신체 활력의 저하, 식욕 및 성욕 등 생리 현상의 변화, 사고 속도의 저하 등의 증상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여러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은 생체 호르몬, 체내 면역력, 염증 형성과 회복 능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의 병이 결코 아닌, 신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실체를 가진 병이라 할 수 있겠다.

 

심장 질환과 우울증의 관계

우울증과 심장 질환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된 바 있다. 우울증의 영향으로 시상하부 - 뇌하수체 - 부신피질 축에서 만들어낸 코티솔(cortisol)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성인병의 발생과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외 수면과 생체 리듬의 장애 등도 신체 내 생리 작용에 혼란을 주며, 결국 심장 질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우울증으로 인한 활력과 의욕의 저하는 신체 질환들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 심장 질환의 치료 시기를 늦추기도 한다. 2017년 독일 헬름홀츠 연구소에서 45-75세 남자 3428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관련하여 우울증이 고지혈증이나 비만과 비슷한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연구상에서 우울증보다 심혈관 질환과 연관성이 더 큰 것은 흡연과 고혈압, 두 가지뿐이었다. 우울증은 이처럼 심혈관 질환의 비선천성(non-congenital) 원인 중 중간 정도의 위상을 차지할 정도로 심장 질환과 관련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심장 질환을 가진 경우 병의 악화나 증상에 대한 만성적 염려와 두려움처럼 심리적 스트레스가 극심하며 생활의 위축, 활동 반경의 축소 등이 있어 삶에 큰 변화를 야기한다. 병으로 인한 변화는 우울증의 발생에 충분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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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가 심장 질환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이 심장 질환을 포함한 성인병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로 적극적인 우울증 치료는 신체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이에 대해 많은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심장 질환을 앓았던 고위험군에서 우울한 기분, 무의욕, 식욕 저하, 수면 장애 등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들이 나타났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하게 된다면 심장 질환의 재발과 사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최근 JAMA(JAMA.  2018;320(4):350-358. doi:10.1001/jama.2018.9422)에서 발표된 바 있다. 

전남대학교 김재민 교수의 연구팀은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Acute coronary syndrome, 이하 ACS)으로 진단받은 이들 중 우울 증상이 있는 이들에게 우울증 약물인 렉사프로(성분명 Escitalopram)를 24주간 투여한 후, 장기간 (최장 12년, 평균 약 8.1년가량) 추적관찰을 한 결과 위약을 투여한 환자에 비해 심장 질환의 재발, 사망의 비율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심장 질환의 재발로 인한 시술, 사망 등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29%가량 낮았으며, 세부적으로 심근 경색의 통계적 예방 효과는 46%였다. 이는 우울증 약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유의한 차이였다.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심층적 정신역동치료(정신분석) 등을 통한 심리적 고통의 해소는 장기적인 신체 질환의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스웨덴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362명의 심혈관 질환 입원 경험자를 대상으로 인지행동치료의 재발 예방 효과를 연구했는데,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군에서는 심장 질환의 재발률이 36%로 대조군의 45%에 비해 낮았다. 이 중 심근경색의 발생 여부만 놓고 본다면 21% 대 30%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만약 신체 질환으로 인한 삶의 변화로 심적 고통을 느낀다면, 정확한 평가와 적절한 치료를 받는 편이 좋다. 이는 우울증 자체가 가진 위험성뿐만 아니라, 우울증이 신체 질환들을 유발하거나, 악화 혹은 재발하는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병을 대처하는 태도가 변하고, 신체 질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적 동기(motivation)를 얻을 수도 있다. 우울증은 더 이상 마음의 병이 아니다. 우울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질환인 것이다. 

 

* 참고 자료

1. Effect of Escitalopram vs Placebo Treatment for Depression on Long-term Cardiac Outcomes in Patients With Acute Coronary Syndrome: A Randomized Clinical Trial., KIM JM et al., 
JAMA., 2018;320(4):350-358.
2. 인지행동치료, 심혈관 질환 재발률 낮춰, 헬스조선, 2011.5.4
3. "우울증도 심장병 위험요인", The Science Times, 201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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