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동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극 에쿠우스가 올해로 한국 초연 43년을 맞았고 봄에 이어 가을에 충무아트홀에서 곧 상연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요즘 인생이라는 말로 단어를 수식하는 것이 유행인데 '인생연극'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을 만큼 에쿠우스는 내게 특별한 연극이다.
 

<에우쿠스> 피터 쉐퍼 (신정옥/범우)


정신과 의사가 되려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던 시절, 비록 지금은 불미스러운 일로 퇴장한 그 배우가 알런 스트랑 역을 맡았을 때 처음으로 에쿠우스를 봤다. 당시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너무 멋있고 너무 강렬한 연극이다.'라는 인상이었고 피터 쉐퍼의 희곡 '에쿠우스'를 사서 반복해서 읽고 또 읽을 정도로 몰입했었다.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이 희곡의 줄거리를 해석하면, 말 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는 범죄를 저지른 소년 알런 스트랑이 형사처벌을 받기에 앞서, 정신과적 이유로 심신 미약 상태에 빠졌고 그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어 판사가 정신감정과 치료를 명령한다. 이를 의뢰받은 마틴 다이사트라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기법으로 소년의 심리 세계와 정신병리를 이해하는 시도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종교관, 다양한 세계관, 산업화와 현대문명의 변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충돌이 다이사트와 알런의 치료 작업을 통해서 드러난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알런은 청소년기에 발병한 조현병 환자였을 가능성이 크고 지금은 정신약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조현병 환자에게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보다는 약물치료를 우선으로 시행하겠지만 이 작품이 쓰인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약물치료보다는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었을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작가는 당시 영국과 미국 등에서 꽃을 피웠던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유명인들 특히 예술가들이 정신분석을 받고 있었는데, 정신분석을 통해 어쩌면 예술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이나 독창성의 근원인 예술가적인 기질이나 기벽조차도 정신병리로 해석되고 이것이 분석되면 마치 창조성이 사라져 버린다는 공포가 당시 예술계에 존재했다고 하니 작가로서 정신분석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작품 속에서 마틴 다이사트의 대사 "...하기야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작품에서 다이사트는 알런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고 정상의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한다. 알런이 말의 눈을 찌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알런의 한 행동의 이유가 다 드러난 순간 다이사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회의감을 표현하며 정상, 즉 평범함이라는 세계로 알런을 데려오기 위해 알런의 세상, 어쩌면 병적일지도 모르는 세상을 파헤치고 파괴해버린 것에 대해 자괴감을 표현하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그러나 작가의 우려처럼 과연 정신분석이나 정신과 치료가 예술가의 창조성을 없애는 것인가에 대하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예술가의 창조성과 정신병리가 일부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간질과 관련된 정신증상의 일종인 환각으로 해석되는 고흐의 독특한 터치나 강박증적인 점에 대한 집착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경우가 그러하고 할 수 있겠다. 고흐의 경우 오히려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예술세계를 다 펼치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볼 수 있으며 후기에는 정신증상이 악화되어 오히려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증상이 심해 입원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고 하니 오히려 정신과 치료가 그녀의 예술세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쿠사마 야요이 <플라스틱 호박>


피터 쉐퍼가 우려하는 것처럼 정신분석과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는 한 개인의 독특하고 고유한 세계를 파헤쳐 평범함에 맞추려고 하는 것, 즉 정체성이나 고유성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치료이다.

정신과 의사가 되기 전의 에쿠우스를 보던 시각과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난 후 에쿠우스를 보는 내 시각은 많이 달라져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알런 스트랑에게 초점이 맞춰졌다면 후자의 경우 마틴 다이사트에게 훨씬 더 많은 감정이 이입된다. 물론 피터 쉐퍼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마틴 다이사트의 입장, 특히 정신분석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작품 속 마틴 다이사트가 알런을 대하는 태도나 고민은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나름으로는 인생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매 상연마다는 아니더라도 꼭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올해 봄 에쿠우스는 놓쳤지만 가을에 올라가는 에쿠우스는 꼭 챙겨봐야겠다. 볼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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