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가끔 가족 간 대화 양상을 살피기 위해 제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합니다. 처음엔 의사 앞이라 대화를 망설입니다. 하지만 진료실까지 온 가족들의 마음가짐은 이내 부끄러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이런 장면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야기를 쏟아내죠. 내용은 상대방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 가족 쉽지 않겠구나.'

 

간혹 (남편이 아닌) 아버지가 치료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년의 아버지, 10대 아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어렵습니다. 사건은 거의 비슷합니다.

학교에서 술, 담배, 폭력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중학생 아들. 40대 아버지는 참다못해 아들을 때립니다. 아들은 더욱 반항합니다. 아버지가 싫다며 더욱 밖으로 도는 아들. 몸집이 커지자 아버지에게 대드는 모습도 보입니다. 결국 아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와 아들이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단단히 각오를 한 중년의 아버지. 아들을 노려 보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너만 할 때는 말이야..."

전 한숨이 나옵니다. 가장 치료가 오래 걸리는 경우입니다. 

'이 가족 쉽지 않겠구나.'

 

계속 말이 없는 아버지도 많습니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뒤에 하는 한 마디.

“아버지가 미안하다. 이제 안 그러마.”

이 경우는 예후가 다양합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합니다. 하지만 미숙한 아이는 자신이 승리했다 생각하죠. 그리고 이후 더욱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도 사고뭉치였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그래서 무섭더라. 네가 나랑 너무 똑같이 행동해서. 네가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가만있습니다. 전 아이의 눈빛에서 상당히 치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진_픽사베이


제게도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아버지가 절 시내 조그만 식당으로 불렀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생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진 시골에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배웠다. 그런데 네가 중학생인데 안 그래서 참 고맙다. 아버진 이맘때부터 아버지가 없어서 지금부터 널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여러 가지 말을 제게 하셨죠. 하지만 생각나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술, 담배, 눈물, 모르겠다.

그리고 전 학창 시절, 술, 담배에 대해 호기심조차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자녀에게 약점을 먼저 드러내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주변이 없는 중년의 아저씨라면 훈계보단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자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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