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마음과 힙합> 02

사이먼 도미닉은 최근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이다(노파심에 말하자면 TV에 나오는 그 ‘쌈디’ 맞다). 몇 개월 전 그는 자신의 레이블 AOMG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직서도 공개했다. 하지만 좀 특이한 사직서였다. 종이 대신 소리로 만든 그의 사직서 제목은 ‘Me No Jay Park’이었다. 

사장님 대표님 소리도 징그럽게 들려
난 Park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네 그저
지금 사임서를 작성 중 이 노래가 그거

노래를 들으며 몇 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래퍼가 랩으로 할 말을 전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로 세상에 말하는 광경이었다. 더불어 힙합의 자기 고백적 특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노래를 들은 후 당신은 굳이 네이버에서 사이먼 도미닉을 검색할 필요가 없다. 노래만 들어도 당신은 래퍼에 대해 알 수 있다. 래퍼들은 노래에서 자기의 실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러나 ‘Me No Jay Park’이 내게 안겨준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치유’였다. 이 노래는 음악이 아니라 마치 치료과정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사이먼 도미닉은 마치 운동선수가 재활하듯 랩으로 자신의 정신을 치유하고 있었다.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쓰다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진_픽셀


힙합을 좋아하고 아낀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나에게 힙합이란 기성의 모든 것을 뒤흔든 혁신적인 예술인 동시에 세상을 살기 위한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다. 또 늘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는 음악인 동시에 동시대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다. 힙합을 생각하며 내가 떠올리는 단어는 진실함, 자신, 긍정적 기운, 늘 위로 향하는 방향성, 더 나아지려는 노력, 야망과 포부, 내 방식대로 생각하기, 리스펙트 등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나와 조금의 교집합도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힙합을 비판하거나 최소한 불편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나 같은 사람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왜 힙합은 욕설과 거친 표현을 좋아하는지, 왜 래퍼들은 자랑과 잘난 척을 하는지, 왜 랩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지, 제일 유명하다는 힙합 음악에 여성 혐오 메시지는 왜 들어있는지에 대해 나는 늘 설명해야 했다. “대체 이런 걸 왜 좋아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나는 이미 익숙하다.

물론 어떤 비판은 일리 있다. 또 힙합을 불편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힙합이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말할 생각이 없다. 고칠 것이 있다면 개선해서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많은 부분에서 찝찝하고 아쉽다.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 비판 이상으로 부당한 비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힙합을 바라보고 대하는 기성의 많은 태도가 갑갑하고 균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과 힙합, 그리고 힙합과 치유에 관해 논하는 광경을 어떤 이들은 의아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겸손은 미덕이지만 자부심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고, 감정의 다양성과 다른 상상력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운동선수도 실력이 아니라 선행과 기부를 해야 비로소 인정받는 이 도덕주의 사회에서 힙합과 치유를 함께 논한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의 내 오랜 경험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힙합 음악을 들으며 내 마음이 치유되었던 순간, 내 삶이 더 좋아졌던 기억, 힙합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하는 래퍼들, 힙합 덕분에 힘든 시절을 버텼다고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내왔던 사람들. 이 모든 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진짜’였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힙합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음을 믿으며, 더 나아가 힙합이 사람들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존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 연재를 시작한다.

 

 

* 김봉현

작가, 힙합 저널리스트. 현재 <에스콰이어> <씨네2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CGV와 개최했으며 랩 다큐멘터리 <리스펙트>를 기획하고 개봉했다.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 <블랙아웃>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힙합 에볼루션》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힙합의 시학》 《The Rap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김경주 시인, 래퍼 엠씨메타와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셋이 《일인시위》 단행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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