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22일,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한 여인이 칼에 찔려 죽었고, 범인은 전 남편으로 밝혀졌다. 피해자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사형할 것을 청원했는데, 29일 현재 약 14만 명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청원 그대로 아버지가 사형된다면 피해자는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가해자가 사형이 된다고 해서 비슷한 범죄가 방지될 리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법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이 어떻게 문제일까?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따라서 유족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정리했다.

1993년에 결혼을 한 이후 가해자는 아내와 세 자녀 모두를 때려왔다. 자녀들도 유치원생일 때부터 피멍이 들 정도로 때려왔으며, 점점 더 그 강도는 심해졌다. 심지어 자녀가 중학생일 때는 밧줄로 묶고 구타를 한 적도 있었다. 몸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자녀들은 한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폭군이었던 것과 달리, 집 밖에서 가해자는 아내에게 밥도 떠 먹여주는 자상한 가장이었다.

지속적인 가정 폭력 때문에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었으나, 가족이고, 보복이 두려워 신고할 수 없었다. 결국 2015년 2월, 어머니가 맞는 것을 견디지 못한 둘째 딸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가정폭력이 시작되고 20여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가해자를 체포하여 긴급임시조치를 내렸으며, 법원도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전처럼 가족들을 위협할 수 있었다. 이런 명령을 어겨봤자 벌금형이며,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 폭력을 이유로 2015년 9월에 이혼을 하게 됐다. 이혼을 하고, 남편을 피해 자녀들과 함께 계속 거주지를 옮겼음에도, 남편은 피해자 앞에 나타나 폭력을 휘둘렀다. 이런 일들이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가해자는 체포되지 않았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심신 미약을 주장하기 위해 정신과를 다니면서, 동시에 전처와 자녀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했다. 결국 2018년 10월 22일, 가해자는 주차장에서 계획 살인을 저질렀다.

 

이 사건 속 등장인물은 가해자, 사망한 피해자, 세 자매, 경찰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그림자 속에는 숨겨진 등장인물들이 있다.
 

사진_픽사베이


첫째, 친척과 이웃 주민들.

가장 먼저, 정확하게 가정폭력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다. 가해자가 가족들을 때릴 때 생기는 비명소리, 물건 던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이웃들은 가정폭력 상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가까운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남에게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가까운 친척들에게는 전화로라도 하소연을 한다. 명절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 가해자가 가족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무리 잘 해주더라도, 가족들의 몸에 난 상처와, 긴장, 위축까지 숨길 수는 없다. 따라서 친척과 이웃 주민들은 가정폭력에 대해 의심했을 수도 있다.
 

둘째,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

학부모 면담이 제대로 진행이 됐을 리는 없다. 하지만,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맞아왔다. 어머니가 심하게 맞는 상황에서, 자녀들의 옷과 몸이 단정했을 리도 없다. 온몸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닐 정도라면, 자녀를 담당했던 선생님들은 가정폭력에 대해 의심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

우리나라에서는 다치면 병원에 간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진료를 한다. 가정폭력에 의한 외상은 굉장히 독특하다. 맞은 뒤 며칠이 지났는지에 따라 멍의 색은 변하는데, 다양한 색의 멍이 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환자의 진술과 상처 부위, 상처의 정도가 일치하지 않는다. 넘어져서 다쳤다고 하는데, 정작 멍은 종아리 뒤편에 있다. 혹시 넘어진 이유가 뇌나 평형기관의 문제가 아닌지, 검사하려 하면 거부한다. 가해자가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꽤 흔하다. 이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 곁을 떠나지 않고 금슬 좋은 부부처럼 연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검사는 거부한다. 피해자와 자녀들은 진료한 의사는 가정폭력에 대해 의심했을 수도 있다.
 

친척과 이웃 주민들, 세 자녀의 선생님들, 피해자와 세 자녀를 치료한 의료인들. 이들은 적어도 50명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모두 침묵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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