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인식

잠깐 예전 이야기를 해보자. 과거 '정신과'의 인식에 관한 이야기다. 예전에는 정신과 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 낙인에 가까웠었다. 정신과 질환을 가진 가족이 있으면 이를 쉬쉬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으며, 심한 경우 집에서 감금시키다시피 했다. 집안의 정신과 환자는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치부였다. 또,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하면 '미친 사람', 혹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이기에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고통으로 취급받거나, 일부러 상처를 과장해서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핀잔도 들었다. 더 놀라운 건, 위와 같은 편견이 그리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편견 해소를 위해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에도 위와 같은 생각은 가진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한민국이 정신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경제 규모의 확장,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것을 먹고 누리는 데서 삶의 질로 점차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안에 도사린 것들이 내 삶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날로 증가하고 있는 정신 건강 분야의 사회적 지출과 그 비용이 인식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당장 포털 사이트의 뉴스 면을 보면 '삶의 질', '정신 건강', '우울증'과 같은 용어들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지 않은가.
 

사진_픽셀


몸의 건강 못지않은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심각한 질환이 아니어도 스트레스 관리, 가벼운 우울과 불면 등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신적 질환이 '실체가 없는 것, 부끄러운 것'에서 '드러내고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의 인식 변화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물론 우리에게 아직 갈 길은 멀다. 2017년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통계가 처음 발표되었다.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참담하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에서 10위권인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2006년부터 10여 년간 GDP가 28.6% 증가하는 동안 삶의 질 종합 지수는 1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사회 계층의 양극화와 박탈감의 심화, 경쟁적이고 냉담한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다. 결국 이는 낮은 삶의 질로 귀결되며 정신 건강을 해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몸의 건강이 아닌 마음의 건강 또한 주기적으로 평가받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6가지 오해와 진실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존재한다. 뜬소문과 도시 괴담 수준의 정보를 벗어나, 사람들이 가지는 의문과 오해 6가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자. 


1. 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던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다. 진료 시에 드는 비용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대개 일관적으로 높은 비용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비용은 진료비 + 정신요법(흔히 말하는 상담비용) 비용으로 산정하는데, 장기간의 정기적 상담이 필요한 경우와 증상이 어느 정도 잘 유지되어 긴 시간의 면담이 필요 없는 경우의 치료 비용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 투약에 대한 비용을 제외하면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1만 원 안팎이니, 이를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치료 금액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심층적인 상담치료 혹은 EMDR, 최면 치료와 같은 특수 치료가 포함되는 경우이거나, 불안-우울 등의 평가 척도를 추가로 사용하는 경우다. 정신병리의 수준 평가를 위해 시행하는 심리 검사 비용 또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개인마다 필요한 치료의 형태가 다르며 비용의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2. 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던데?

이 또한 편견이다. 과거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을 가진 이들의 보험 가입이 제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현재는 학회와 정부의 노력으로 억울하게 제한당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대개 일관적 지침이 있기보다 다른 신체 질환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병 수준, 병력, 기간 등에 따라 자체적인 심사를 통해 여부가 결정된다. 물론, 여전히 보험회사의 경직된 인식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으나, 이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지침이 만들어져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참고 기사: 정신과 환자는 보험 가입이 안 되나요?)
 

사진_픽사베이


3. 회사 취직, 대학교 입학에 불이익이 생긴다던데?

도시 괴담 수준의 이야기다. 의료 기록은 관련법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개인의 병력과 기록은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열람하거나 확인할 수 없다. 심지어 함께 사는 가족도 불가능하다. 대학교, 회사 그 어느 곳도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을 볼 수 없다.   
 

4. 약 먹으면 못 끊는다, 머리, 신체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던데?

이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어렵게 하는 편견 중 하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약물 중 몇몇 약물은 내성과 의존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치료 허용 용량에서는 의존과 내성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만약 발생하게 된다면 다른 약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신체 질환들에서처럼 치료 기간과 중단 여부가 명확하지는 않아, 조심스럽게 용량을 줄이며 생활에 적응하는 정도를 관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 기간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오해를 산다.  

오랜 기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약물들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데이터가 굉장히 많이 누적되어 있으며, 정신과 약물의 장기적인 영향 또한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다. 특정 약물이 개인에 따라 간, 신장, 혹은 심장 등에 손상을 줄 수는 있으나 매우 드물고, 이러한 약물을 쓸 때는 주기적인 신체 검진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정신과 약물이 장기적으로 사용할 때 신체 장기에 손상을 준다는 이야기는 그릇된 오해일 뿐이다.  
 

5.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이상한 사람만 가는 것 아닌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심한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입원이 필요한 질환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불안, 환경 변화로 인한 적응장애, 가벼운 수준의 불면증 등에 대해 근거에 기반한 의학적 치료 방법으로 도움받을 수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 관리 또한 과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개인에 맞는 치료가 가능하다. 중한 질환이 있어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다는 인식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6. 약이나 수술이 아닌, 말로 상담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불안과 우울에 대해 그 효과가 입증된 심리치료 중 하나인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특정 질환에서는 약물과 함께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치료 형태이며, 어떤 연구에서는 인지행동치료를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에 약물치료와 동등한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또, 임산부나 어린 소아처럼 약물 치료를 하기 어려운 경우 심층적인 심리 상담, 놀이치료 등의 비약물적 치료가 먼저 고려되기도 한다. 

 

외과에서는 수술로 환자를 치료하고, 내과에서는 각종 약물과 시술들을 통해 병을 낫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또한 약물만을 처방하는 곳이 아니라, 약물과 심리 상담을 두 축으로 마음 건강을 위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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