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눈앞에 맛없는 건강식과 달콤한 초콜릿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 밋밋한 맛의 건강식에 먼저 손이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십중팔구 달착지근하고 녹진한 맛을 상상하며 초콜릿을 집어 들 것이다. 아니, 초콜릿을 입에 털어 넣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음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다이어트 중이라면? 배고픔을 참으며 다이어트 중인 이들은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살을 빼야지'와 같은 결심은 대뇌의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관장하는 이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배고픔을 느끼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맛있고 높은 열량의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이성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 있다. 이성과 무의식의 대결은, 대개 무의식의 승리로 끝난다. 식욕과 행동을 부추기는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 피질 아래의 변연계와 시상하부의 반응 속도가 전두엽의 작용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본능은 늘 이성보다 몇 발자국 빠른 셈이다.  

"배가 고프면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배달 앱을 검색하게 돼요."
"일단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입에 넣고 나서 '아차' 싶어요"

다이어터들은 이성과 본성 간의 전쟁에서 너무 간단하게 백기를 든다. 이는 '결심이 부족해서'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닌, 단지 본능이 이성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이어트에서 패배만 할 것인가? 우리에게도 이성의 힘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연구가 다이어트 성공을 위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식사 과정에 작은 습관을 끼워 넣자

이성의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인류는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던 인간의 뇌를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들 간의 연결은 외부 자극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가 습관(habit)이라 부르는 것은 한 촉발 요인에 대한 동일한 반응을 반복하면서 뇌세포들 간에 일종의 경로(pathway)가 생기면서 형성된다. 차를 몰고 처음 보는 지역을 다닌다고 생각해보자. 네비게이션을 확인하고, 표지판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조심스럽게 운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지역을 열 번, 스무 번 다닌 후에는 어느 지점에서 좌회전하고, 어느 곳에 주차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감이 생긴다. 만약 백 번 이상 같은 곳을 다녀야 한다면,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음미하면서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된다. 경로를 읽고, 예측하고, 판단하는 뇌 부위의 세포들이 탄탄하게 연결되어 일종의 습관이 생겨난 것이다. 뇌가 자율주행을 하는 것과 같다. 

이성을 관장하는 전전두피질의 힘을 키우는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해, 전전두엽을 자극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영역의 활동은 전전두피질의 세포들을 자극한다. 자극을 받은 특정 뇌세포들은 더 탄탄하게 연결된다. 강화된 전전두피질의 힘은 불안정한 감정과 정서, 본능적인 행동들에 뿌리를 내려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식사의 통제와 관련된 아래 두 실험에서는 음식을 먹기 직전 간단한 습관(ritual)을 끼워 넣음으로써 식사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가능케 도왔다.
 

사진_픽셀


1) 첫 번째 실험

2018년에 Tian 등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는, 대학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 식사 직전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했다.

1) 접시의 음식을 반으로 나누고, 
2) 나눈 음식을 접시 양쪽으로 대칭이 되도록 배열하고
3) 접시 위의 식기를 세 차례 누르기 

식사 전 위 행동을 반복한 그룹에서 음식 섭취량은 평균 1424 칼로리로, 일반적인 식사를 한 그룹에 비해 약 200 칼로리가 낮았다. 또, 위 습관을 반복한 그룹에서 지방 및 설탕의 섭취량도 줄어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막상 실험 대상 그룹의 사람들은 '이 습관이 체중 감량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개 실험 후 위 행동을 중단하였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실험

같은 연구에서 행해진 실험으로, 대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각자에게 작은 당근이 든 비닐백 3개와 초콜릿이 든 비닐백 1개를 주었다. 세 개 중 두 개의 당근을 먼저 먹고, 마지막 당근을 먹기 전 당근과 초콜릿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해 답하도록 했다.  한 그룹에게는 당근을 먹기 전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도록 했다.

1) 오른손을 주먹 쥐고 테이블을 2차례 두드리기
2) 당근이 든 비닐 백을 바로 앞에 가져다 놓기
3) 당근이 든 비닐 백을 오른손으로 두 차례 두드리기
4) 심호흡을 한 후, 2초간 눈을 감기 

다른 그룹에서는 당근을 먹기 전 위 행동이 아닌 무작위의 행동을 하도록 했고, 나머지 한 그룹에서는 아무 행동 없이 음식을 먹도록 했다. 그 결과, 음식을 먹기 전 위 4단계의 행동을 끼워 넣은 이들은 세 번째 당근을 먹기 전 받은 질문에서 58%가 당근을 택했다. 음식 섭취 전 무작위의 행동을 했던 이들은 46%, 아무 행동을 끼워 넣지 않고 식사를 했던 이들은 35%에 그쳤다. 

 

두 연구에 대한 일반화를 경계해야 하지만, 두 실험 모두 식사 직전의 의식적인 행동이 음식에 대한 자기 통제를 높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식사 조절에서뿐만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emotion-driven behavior)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행동 직전 감정을 분류하고, 점수를 매기고, 생각을 기록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격앙된 감정에 따른 충동적인 행동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는 전전두피질을 자극해 무의식에 적절한 이성의 힘이 작용한 탓일 테다. 만약 당신이 통제되지 못한 식욕 앞에 매번 무릎을 꿇는다면, 식사 이전 자신의 이성 영역을 자극할 수 있는 작은 습관들을 발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 참고 자료 

1. Need more self-control? Try a simple ritual, Scientific American, 2018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need-more-self-control-try-a-simple-ritual/)

2. Enacting rituals to improve self-control, Tien 등, Jou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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