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툼이 없었던 부부가 있을까? '나는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다'는 부부는 멸종 위기의 희귀 생물에 가까울 정도다. 더욱이 주체성과 자기표현이 당연시되는 요즘 세태에서는 부부간의 다툼이 더하다.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 싫은 것은 싫다 표현을 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날 선 대화는 필연적으로 부부 싸움으로 끝을 맺는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부부간의 다툼은 당연하긴 하다. 수십 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누리며 살아온 이들이,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장하자면 다른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던 두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게 된 것과 같다. 표현과 정서, 행동의 차이는 충돌을 만들고, 갈등에 조금씩 불이 붙는다. 또, 결혼 생활은 둘만의 문제가 다가 아니다. '결혼은 집안끼리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알콩달콩 둘만 살면 될 것 같았던 부부 생활에 양가의 식구들, 친구들, 주변인들이 일으키는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결혼이 처음이라, '결혼 초보'들은 흔들릴 수 밖에.

대부분의 부부는 초반의 갈등이 잘 봉합되어 결국 상대방의 삶과 자신의 삶을 조율할 수 있게 된다. 기타 줄을 튜닝한 후에야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제야 부부의 삶을 함께 협연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초반의 갈등을 매듭짓지 못하고 쓰라린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부부 생활을 지속하게 되기도 한다. 이미 혼인 신고는 했으니, 이왕 결혼은 했으니, 혹은 아이는 있으니 그냥 억누른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 부부 싸움은 끊이지 않고, 결혼 생활은 누구의 말마따나 무덤보다 못한 곳이 되어 버린다.

그들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 부부 싸움을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부부 싸움은 이성적인 토론의 장이 결코 될 수 없다. 작은 말다툼이 점점 커지고, 서로 흥분한 상태에서 상대를 향한 정제되지 않는 말들이 그대로 쏟아져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부부 싸움의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부부 싸움이 끝난 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복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후회, 자책, 상대에 대한 원망, 서운함 등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며칠 동안 남아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직장에서의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집에 돌아가도 배우자를 마주하는 일이 가시방석에 앉은 마냥 불편하기 마련이다. 
 

사진_픽사베이


♦ 부부 싸움, 몸도 병들게 한다

부부 싸움을 한 후 마음의 불편함은 당연하다. 게다가 부부간의 다툼은 신체에도 해가 된다. 무의식적인 불편감의 인식은 인간의 자율신경계를 자극하여 'fight-or-flight(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반응'을 유발한다. 어느 쪽이든 급하게 에너지를 동원하고 이를 이용해야 하기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빠른 호흡으로 숨이 찬 느낌, 전신의 긴장, 떨림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혈관과 장기들이 급속하게 가동되어, 무리가 간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에 속하며, 잦은 스트레스 반응은 고혈압, 당뇨병 등의 여러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부부 싸움이 마음뿐 아니라 신체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상세하게 밝혀냈다. Janice 등이 Psychoendocrinolog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부부 싸움을 할 때 과격하고 적대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이들의 신체에서 정상적 수준보다 높은 염증 반응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또, 상대에 대한 적개심(혹은 분노)가 더 높을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심한 스트레스 반응은 "leaky gut"이라는 반응을 유발하는데, 장에서 박테리아와 염증 성분이 혈액으로 누출되는 것을 뜻한다. 격렬한 부부 싸움 끝에 속이 메스꺼운 느낌, 속이 불편한 느낌은 이 때문일 수 있다. 염증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면역력이 낮고, 사소한 신체 질환의 회복이 늦어지고, 각종 병의 발생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 이외에도, 싸움의 끝에서 우리의 신체는 병들어간다. 

 

♦ 싸우지 않는다면 얻을 수 있는 것들

반대로, 부부 싸움을 잘 하지 않고 포옹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부부의 신체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포옹과 사랑의 감정은 체내에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토록 한다. 옥시토신을 비롯한 긍정적인 감정에서 방출되는 호르몬들은, 감기를 비롯해 여러 감염에 저항력을 높여주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안정된 가정생활은 스트레스 반응을 낮추어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을 억제하는 부교감신경(parasympathetic nerve system)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심혈관계 및 신경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싸우지 않으면 좋다'는 것 이상으로 행복한 부부 생활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진_픽셀


♦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부부 싸움이 신체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알겠다. 그렇다고 과연 '싸우지 말자'는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한쪽이 복종적이거나, 서로 무관심한 부부가 아니라면 상대에게 가지는 복잡다양한 감정이 결국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부 싸움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또, 부부 싸움이 모두 백해무익하다고 할 수도 없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 그 합일점을 찾아가는 것이 관계의 흐름이다. 이 정 · 반 · 합(正 · 反 · 合)의 과정이 결국 부부의 삶을 더 높고 안정적인 곳으로 이끌 수도 있다. 관계는 끊어지고 이어짐을 반복하면서 더욱 탄탄하게 엉겨 붙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부 간 갈등을 어떤 과정을 거쳐 다루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이는 특히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둘 사이에 아직 사랑의 온기가 남아 있다면,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공감하며 관계를 현명하게 잘 풀어나가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다툼의 마무리에 대한 이상적인 방법은 부부마다 다를 수 있다. 대화로 끝내든, 드라이브나 산책, 여행과 같은 액티비티를 하든,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이를 오랜 기간동안 습관화(habituation)하자. 사랑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은 채 몇 년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초기에 잘 연습한 다툼 극복 방법은 시간이 지나며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배어든다. 결국 사랑을 매개로 한 두 사람의 삶의 습관이 부부 생활 전반에 녹아들게 될 것이다.  

 

* 참고 자료
1. Arguments With Your Partner Can Make You Sick, Suzanne Degges-White, Psychology Today(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lifetime-connections/201808/arguments-your-partner-can-make-you-sick)
2. Marital distress, depression, and a leaky gut: Translocation of bacterial endotoxin as a pathway to inflammation., Janice K. Kiecolt-Glaser et al, Psychoneuroendocrinology, 2018
3. Does hugging provide stress-buffering social support? A study of susceptibility to upper respiratory infection and illness., Sheldon Cohen et al, Psychological Scienc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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