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 있는 건 불길에 휩쌓인 것과 같다. 분노를 화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이쪽에서 시작된 불이 나를 태웠고, 상대에게 난 불이 나도 태운다. 그렇다고 불을 억지로 누르려다보면 폭발이 일어난다. 세상엔 엄연히 나쁜 사람이 있고, 그들을 향해 화를 내는 건 정당한 일이다.

용서를 하는 건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분노로 인해서 다 타버린 땅에 씨를 뿌리고, 적당히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내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었어도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용서가 행복을 가져다줄지, 평안을 가져다줄지, 오히려 자괴감과 실망을 가져다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함부로 용서를 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 용서를 권하는 건 가혹한 일이다. 집이 불타고 있고 옷이 불타고 있는데 불타는 텃밭에 들어가서 씨를 뿌리고 사랑으로 화초를 다듬으라는 말이다. 화난 사람에게는 그저, 따뜻한 차를 한잔 대접하거나 평소에 먹지 못하는 좋은 음식을 권하는 게 낫다. 다친 사람에게 네가 잘못해서 다친 거라고 말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일이다.

특히, 부글부글 끓으면서 분노로 타고 있는 사람은 그냥 두는 게 낫다. 화를 내면 화내게 두고 남탓하면 남탓하게 두고, 억울해하면 억울해하게 두고, 스스로를 불쌍해하면 스스로 불쌍해하게 두어야 한다.

상처입은 사람에게 화낼 권리 정도는 주어야 한다. 화내라. 태워라. 마음을 다 태워버리고 눈물도 흠뻑 흘려라. 용서는 나중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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